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사도 2,36-41; 요한 20,11-18
여러분은 이런 질문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우리가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지만 죄를 안 짓는 게 꼭 잘하는 일일까요?’ 물론 죄를 일부러 지으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만 안 좋은 죄와 잘못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얼까요?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압니다. 아이가 자기 잘못으로 인해 물건을 깼을 때나 어떤 손상을 입혔을 때, 자기도 놀라서 ‘엄마~’ 하며 우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면서 엄마 품에 안기려고 합니다. 물론 이성적으로 볼 때 자기가 잘못했지요. 그래서 아담과 하와처럼 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이런 것도 있지요. ‘본인이 복구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울면서 엄마 품에 돌아오려 한다’ 는 것을요. 어쩌면 우리가 죄를 짓고서 느끼는 감정도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후회의 뉘우침을 통해서 뭔가를 깨닫게끔 만드는 잘못이라면 그 잘못과 죄는 어떤 성격을 가질까요? 꼭 나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부활 성야 때 ‘부활찬송’ 가사 중에 이런 것이 있었지요. ‘오~ 복된 탓이여,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분명 아담이 지은 원죄로 인해 인간은 죄의 굴레에 덮쳐진 운명이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을 통해서 정작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임을 알았다면, 그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 부활찬송처럼 ‘복된 탓’ 일 텐데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도 자신의 행동에 마음 아파하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묻는데요.
분명 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성격을 지닙니다. 그래서 이 죄에 더 중독되면 어찌 되는지 아십니까? 자신의 잘못을 씻으려 마치 유다처럼 본인의 노력과 수고로 결론을 지으려 합니다. 그래서 잘되면 다행이지만 꼭 그렇지 않지요. 맘대로 안되면 여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주저앉고 맙니다. 그가 그랬지요. 받았던 은전 서른 세켈을 돌려주러 갑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은 그건 자신들과 상관없다며 돈을 안 받지요. 유다 입장에서는 돈을 돌려주지 못했으니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을 택합니다.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기에 사도의 수장이 되었지요. 잘못으로 인해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죄로 인해 하느님께 감사와 돌아갈 곳이 있음을 알게 된다면, 단순히 안 좋은 것, 부정한 것만은 아닐지 모릅니다. 하느님은 안 좋은 것을 통해서도 좋은 것을 뽑아내시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