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주일
요즘 현실이 그렇습니다. 자신의 잘남과 똑똑함을 드러내야 한다고요. 어떻게든 미련한 짓을 하면 남에게 짓밟히기에 그런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요. 싸움이 벌어지면 상대가 말할 틈을 주지 않으며 몰아부쳐야 한다고요. 그래요. 그렇게들 이겨봤을겁니다. 헌데 오늘 예수님은 가만히 계실까요? 그걸 모를 분이 아니신데요. 바보같이 그러고 계십니다. 당신 생명이 오가는 중요한 타이밍인데 말이죠.
이걸 이해하려면 그동안 구약의 하느님이 예언자들이 말해왔던 구세주가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는 지 봐야만 지금의 예수님이 이해가 가는데요. 이사야서에 나왔듯이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다.” 2독서의 “당신을 낮추시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봐야 합니다. 왜 이런 방법을 택하셨을까요? 당신이 말씀한 나라는 채 100년도 다 못사는 이곳이 전부가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시는 분에게 지금의 고통이 어렵기 하지만 결국 넘어가야 할 과정입니다.
그러기에 너무 여기서, 지금 모든 것을 뽑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안간힘이 가끔 불쌍해보이고, 애처롭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본인이 살려고 그리 용쓰는 거 압니다. 하지만 몸부림칠수록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보이고 측은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뭘까요?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고싶다면 숙일 때 숙여주고, 굽힐 때 굽혀주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구원사업’을 위해서 일부러 그러셨으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