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간 목요일. 사도 5,27-33; 요한 3,31-36
성당에 다니고, 미사를 드리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규칙을 지키고 순명을 하면서 살다보면 이런 의문점이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는데, 정작 다가온 것은 왜 교회일까?’ 라고요. 복음의 기쁨을 얻고자 왔는데 당장 만나는 교회의 여러 제도와 시스템으로 힘들어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좋아하지만, 교회는 좀 부담스럽고 꺼리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과연 예수님이 이런 교회를 원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오해를 풀어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데요. ①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 후에 생긴 것이 아니라 부활 후 성령강림 후에 생겼습니다. 즉 성령께서 어떻게 일하셨음을 봐야 합니다. ② 교회는 개개인을 위해 생긴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생긴 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 개인주의가 생기며, 이에 전염된 개인 신심 위주의 신앙인이라면 공동체를 가볍게 여겨선 안됩니다. 교회는 모든 이를 위해 생겼기 때문입니다. ③ 앞서 언급한 ‘예수님이 선포한 것은 하느님 나라였지만 정작 다가온 것은 교회였다’ 라는 말의 잘못된 점은, 교회를 보편적 개념으로 봐야 하는데 시간적, 연대기 순서로 보니까 예수님 다음, 교회가 생긴 것처럼 여긴 겁니다. 물론 교회 자체가 하느님 나라는 아니지만, 하느님 나라 없이 교회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설립을 하느님 나라 선포와 예수님 부활 사건의 관계로 진지하게 연결해 보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려고 사람들을 공동체로 불러 모은 게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공동체란, 바로 복음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 공동체가 하느님과 하나되어 일치하도록 도우십니다. 교회를 통해서 믿음으로 모인 이들이, 주님과 합쳐 하느님의 일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란 단순히 복음선포를 위한 수단이 아니고요. 조직, 제도 그 이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공동체가 방향을 잘 잡아가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현존 체험이 있어야만 하는데요. 그래야 모든 일이 힘있게 잘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1독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없는 당시 대사제에게 맹목적인 순명을 강조하는 차원이었다면, 복음의 경우는 예수님과 사도를 통해 이어지는 원초적인 교회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래서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른다” 며 성령을 통한 순명이 교회 공동체의 은총과 질서를 잡아줌을 알려줍니다. 그러기에 같은 길을 가는 우리끼리 괜한 오해와 억측으로 불순명을 하면서 서로 힘들게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서로 모인 공동체를 위해 하느님 나라를 전하러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잘 따르는 삶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