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사도 6,8-15; 요한 6,22-29
정부에서 공직을 사임한 장관이 가르침을 받겠다고 어떤 스승을 찾아옵니다.
‘뭘 가르쳐 드리길 원합니까?’
그가 답합니다. ‘지혜를 원합니다’
‘아이고.. 한 가지 중요한 장애가 없다면야, 난들 기꺼이 가르쳐 드리겠지요’
‘장애가 뭡니까?’
‘지혜는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가 다시 답합니다. ‘그럼 여기서 제가 배울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군요’
여기에 스승이 말합니다. ‘지혜는 배울 수는 있지요. 하지만 가르칠 수는 없는 겁니다.’
배울 수는 있으나, 가르칠 수는 없다는 말이 어떻게 들립니까? 가르친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게 있습니다. 하고 싶다고 다 습득해서 내 것이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려 억지를 써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멀어지는 게 있습니다. 마치 물을 움켜 쥐지만 다 빠져나가는 듯한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의 성령의 은사를 원합니까? 하느님의 허락하심으로 가능할 뿐입니다. 그것을 진정 얻고 싶습니까? 마음가짐과 자세를 먼저 닦아야지요. 앞서 예수님이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라고 말씀하셨지만 실상 우리가 썩어 없어질 것에 계속 신경 쓴다면, 그분은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게 그것인 줄 믿으실 것이기에 쉽사리 당신의 은총을 허락하시지 않을 겁니다. 나의 관심은 진정 어디에 가 있습니까? 그걸 잘 들여다 볼 때 당신의 은총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