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일 성소주일. 사도13,14-52; 묵시 7,9-17; 요한 10,27-30
오늘은 부활 4주일이면서 성소주일입니다. 성소(聖召),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것을 소중히 되새겨보는 날인데요. 부르심은 단순히 성직자, 수도자만의 전유물이 아니지요.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바로 주님의 부르심 덕분에 이루어졌는데요. 예전에 읽은 책 중에 이런 내용이 떠오릅니다. 20대 젊은 친구가 다른 대학생 친구에게 말합니다. ‘교회는 뭣하러 가? 생활비 버는 데에 도움이 돼?’ ‘아니 그렇진 않아. 하지만 주님 덕분에 내가 생활비를 벌면, 그것으로 뭘 할 지 알게 돼’ 교회를 다닌다는 그 친구는 과연 뭘 알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우린 무얼 알아야 할까요?
신학교에 새겨진 큰 비석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 이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많긴 하지만 10가지만 추려보겠습니다. 1. 침묵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제. 2. 기도하는 사제. 3. 힘없고 약한 자를 돌보며 그들의 고통을 나누고 사회정의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제. 4. 검소하며 공금에 명확한 사제. 5. 청소년과 친하게 대화를 나누고 교리교육에 힘쓰는 사제. 6. 겸손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제. 7. 교구장, 장상에게 순명하며 동료사제와 원만한 사제. 8. 신자들에게 알맞은 강론을 성실히 준비하는 사제. 9. 고백성사 등 성사집행을 경건하게 하는 사제. 10. 친한 교우에 메여, 그 사람들의 말만 듣고 움직이지 않는 사제랍니다. 이에 몇 년 후 이런 것도 생겼습니다. ‘사제가 바라는 평신도상’ 이라고요. 이것도 10가지만 추려보겠습니다. 1. 침묵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가 실생활에 드러나는 평신도. 2.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것을 기도하지 않는 평신도. 3. 주변 이웃 중 힘없고 약한 이를 돌보며 사회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낼 줄 아는 평신도. 4. 검소하면서 공금에 명확하여, 본당 재정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평신도 5. 겸손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평신도. 6. 사리에 안 맞는 독선을 피우지 않고, 자기 단체만 위하려는 고집을 부리지 않는 평신도 7. 본당 신부에게 순명하며 같은 평신도끼리 편을 가르지 않는 평신도. 8. 강론을 성실히 듣고 그에 맞춰 살려고 애쓰는 평신도. 9. 고백성사를 자주 보는 평신도 10. 친한 사람들과만 다니지 않으면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지 않는 평신도랍니다.
이것을 차분히 보면서 이 두 사안은 참 많이 닮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란 참으로 비슷한 부분을 가지고 서로 말을 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요.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목소리를 들었건 간에, 주님을 믿기로 선택했기에 여기 왔는데요. 이제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 소중한 부르심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해야 할까요?
여기서 오늘 들은 말씀을 가지고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렐루야에 간략하게 정리된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소중한 것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그것을 쉽게 잃어버리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보석처럼 계속 빛을 낼 수 있도록 갈고 닦을 것입니다. 우린 주님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에게서 무얼 얻었습니까? 이른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꼭 계명과 교리지식이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당연하고 마땅한 것들을 잘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을요. 사랑, 정의, 평화, 화해 등을 말이지요, 허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접하는 뉴스보도는 그리 순수하지 않습니다. 오염된 사람들의 태도와 내용들입니다. 그 높은 위치와 보직에 있는 이들이, 평범한 우리보다 못한 꼴을 보여주면서 창피함을 모르는 염치없는 삶을 오히려 떠벌리고 면피합니다. 우린 이런 역겨운 삶을 탈피해야지요.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처럼 다른 이의 부정적인 면을 갖고도 배울 것이 있고요. 우리가 이미 배운 옳고 크신 주님의 목소리를 통해서 더 많은 깊이의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늘 우린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서 조절해가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주님 덕분에 내가 생활비를 벌면, 그것으로 뭘 할 지 알게 돼’ 라는 말에서 우리가 이제 뭘 해야할 지는 너무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가 바라는 상을 통해서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뭔지를 압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듣고 배운 바를 잘 지키고 보존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주님의 목소리를 이미 들었고, 또 변하는 현실을 지혜롭게 살기 위해 잘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