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주간 목요일.

2022. 6. 9. 오전 1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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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0주간 목요일. 1열왕기 18,41-46; 마태 5,20-26

 ‘영적 세속성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는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의 영광과 개인의 행복을 더 추구하는데 치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솔직히 여기 모인 이유가 거룩한 미사를 드리고 있기에 다들 열심한 듯 보일 수 있지만 마치 학창시절 수업시간과 비슷한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분명 수업시간이지만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수업이 끝난 후 뭘 할까?, 주말에는 어디 가서 놀까? 계획을 짜거나 영어시간에 수학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던 것처럼 자아도취적이고, 자신을 기분 좋게 하는 것에 치중하는 경향을 살필 수 있는데요. 기도를 하더라도 하느님 뜻이 이뤄지길 바라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기도만 하는 것처럼 말이죠. 많은 이들이 실상 그렇습니다. 하느님과 가까워지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진정 예수님처럼 사는 건 부담스러워 하는 현실을 보면서 남들 하는 수준에서 만족하려 듭니다.

 오늘 독서는 어제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당시 아합왕이 결혼정책으로 이웃 페니키아 공주 이세벨과 결혼해 왕비로 삼은 후, 페니키아의 종교와 관습을 받아들입니다. 다산의 상징 바알신을 모시며 이스라엘에게 생명의 기운이 오길 바랐지만 오히려 반대로 가뭄에 시달립니다. 이에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과 반대되는 걸 선택했기에 재난이 온 거라 말하자, 임금에게 내쫓기고, 바알신 모시던 제사장과 싸워이겨 이제 조그마한 구름이 오는 걸 보며 가뭄이 끝나고 승리가 옴을 보는 내용입니다. 복음도 예수님께서 율법을 너머서는 자기 가족에게 성내고, 미워하는 것마저 넘어서야 진정 당신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독서나 복음이나 당대의 유행이나 시류를 따랐다지만 그것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한 상태를 보여줍니다. 단순히 자기 만족, 자기 안위의 폐쇄된 영적 세속성은 그저 공허한 자기 만족의 쾌락을 따를 뿐이고요. 뭔가 변화시키려는 의지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변화하지 않으면서 남을 지적하는 사태로만 이어집니다. 결국 자기들이 범한 범죄로부터 얻은 교훈도 얻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힘들다고만 말합니다. 과연 나는 주님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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