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보통 오늘 같은 사도기념일에는 주님의 제자들이 험난한 역경을 이겨나가며 복음을 전파했다는 강론을 하며 여러분도 열심히 복음 전파를 하라는 내용으로 마감을 짓곤 합니다. 헌데 저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젠 예전과 다른 시각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예전 복음이 전해지던 당시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교회가 보인 좋은 모습 때문입니다. 계급, 신분주의 세상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만민평등사상을 펴고, 특히 여성들이 억울한 대접을 받던 시기에 모두가 형제요, 자매라 말하면서 어려운 이를 돕고 봉사하는 데서 ‘천주교인들은 뭔가 다르구나~’ 라는 인식이 생기며 본받고 싶다며 더 나은 삶을 원했습니다. 그러다 전쟁을 겪으며 고아와 장애자를 돕고 국가가 다 못했었던 교육과 복지사업을 하면서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함께 어울리는 잔치문화를 통해 공동체의 고마움으로 신앙의 길로 접어들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대는 어때야 할까요?
우리도 어렵지만 개신교들도 선교가 안되서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미국교회에서 벌인 설문조사를 소개합니다. 미국의 한 언론은 청소년들이 교회를 회피하는 이유에 대해 다섯 가지로 나눠 설명합니다. 첫째, 청소년들이 교회에 안 가는 것은 그들이 보기에 하느님이 교회에 안 계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교회가 세상에 모범적이지 않고, 자기네만 먹고 마시며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청소년들이 교회를 우선순위로 택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부모가 교회를 우선순위로 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가 신앙의 삶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데 아이들이 중요성을 가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셋째, 청소년들은 이제 교회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등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넷째, 교회에 다니는 청소년과 비신앙인 청소년들과 별로 다르지 않기에 변별력을 느끼지 못해서 다니지 않는다. 다섯째, 청소년들은 자기들과 상관없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데, 교회가 그들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소개하며 한 목사는 말합니다. “교회에서 청소년들이 떠난 이유 중 하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며 “공부를 중요시 여기는 학업 중심의 사회가 그들을 사회로 내몰았다”고요. 이어 “대부분 청소년들이 12시간 이상 공부에 시간을 할애한다고 가정할 때, 주말의 몇 시간을 교회에서 보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결정”이라며 쉴 시간도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주일 2시간으로 청소년들의 신앙을 붙잡으려는 것도 욕심”이라며 “청소년들의 신앙적 성장을 위해서는 교회와 가정 사이에 접점이 있어야 한다. 평일에도 말씀을 한 번이라도 접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은 차이가 크다”면서 청소년들의 신앙 회복을 위해서는 주일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말씀, 기도를 통한 영적 충전이 이뤄져야 하고, 무엇보다 가정에서 부모의 모습이 청소년들의 신앙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덧붙입니다. 부모가 신앙에 있어 모범이 될 때, 청소년은 자연스레 변화한다고 말합니다.
이게 어디 개신교만의 이야기일까요? 그럼 우리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그나마 여기에 여러분이 오신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저는 여러분께 이렇게 강조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닮아 사는 성가정을 통해서 세상의 세파에 이겨내는 삶이 되시라고요. 어차피 세상은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잖습니까? 마치 무모해보이는 주님의 방법을 택하면서 예수님의 방식으로 잘 맞서고 버티면서 이겨내는 방법을 강구하라고요. 그런 도전 정신과 복음화 정신으로 뭉쳐진 삶을 살 때, 상처받지 않는, 이겨나가는 삶이 되고, 세상의 세파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저에게 요구하십니다. ‘애들이 어릴 때는 성당에 다녔는데 요사이는 컸다고 안 나가요.’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요. 가정에서 여러분이 해주실 영역이 있습니다. 저는 그나마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구요. 예전 사도들도 본 정신을 강조하며 다녔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은 집안에서 식구들과 함께 디테일한 부분을 그려주셔야 하는데요. 여러분의 가정이 주님의 복음으로 살고 실천하는 곳이 되길 빌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