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6월25일입니다. 한반도가 전쟁으로 갈린 지 어언 70여 년입니다. 전쟁의 참상과 아픔을 겪으신 분들은 이 날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요새 젊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통일은 안 해도 되고 화해 없이 우리끼리만 잘 지내면 될까요?
오늘 들으신 말씀들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 용서해야 한다.” 독서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주 하느님 안에서 모든 민족이 모여와야 한다.” 라며 하나같이 싫었던 이와 함께 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어떻게 들리십니까? 불편하신가요? 그럴 수 있습니다. 감정은 스위치 키고 끄듯이 그리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폭력과 무력으로 당한 상처에 상대방을 똑같이 응징하는 악순환의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며 이기는, 창의적인 사랑방식이 필요함을 말입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함을 만나야 하는데요.
상담의사들은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가 죽음을 앞두고 5단계의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① 부정 (난 병에 걸렸을 리 없다) ② 화 (이 모든 것은 내 주변 사람 때문이야) ③ 거래 (절 살려주시면... 하겠습니다.) ④ 우울 (왜 빨리 검진받지 않았을까?) ⑤ 수용 (정말 죽는구나..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용서할 때도 같은 과정을 거친답니다. ① 부정 (내가 상처를 받았을 리 없다) ② 화 (내 상처는 그들 때문이야) ③ 거래 (사과한다면 받아줄거야) ④ 우울 (내 잘못으로 이 모든 게 일어났어) ⑤ 수용 (이 상처를 통해 성장하길 빈다) 예수님이 뺨을 맞고도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을 달라는 이에게 속옷까지는 내주는 모습에서, 이제 초점은 상대방이 아니라 그걸 용서하고 평안해지고 나 자신에 대해 진실해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남과 똑같이 행동하는게 아니라 그 문제에서 치유되고 탈피된 행동에서 내가 달라지는데요.
내가 상대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면서 우린 결국 서로가 관련되어 있고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때, 예전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쳐다보게 됩니다. 그로인해 서로가 가진 무장을 해제하고 서로를 치유해주며 새로운 단계로 들어갈 수 있는데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까? 내가 가진 미움으로 인해 나 자신부터 말려 죽이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