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주간 토요일. 아모 9,11-15; 마태 9,14-17
다시금 세상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자유는 억압되고, 진영은 갈라지며, 화합보다는 자기네 주장을 더 견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신냉전이 나오며 생각이 다른 이들과 대화를 거부합니다. 생산품을 서로 교류하다가 자기네가 어려워지니 이젠 자국 위주의 노선으로 바뀌며 성문을 걸어 잠굽니다. 당연히 사람들의 마음도 빗장을 걸어둔 채 이득이 되지 않으면 나오려 들지 않습니다. 어지럽고, 답답하고, 막막한 세상살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신앙인들이 어려울 때 어떻게 견뎠는지 아십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 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제자가 질문합니다. “깨우침을 얻으려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스승이 답합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스승이 빙그레 웃으며 답합니다. “자네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네” “나쁜 소식이 뭔가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네.. 그건 선물이라네” “그럼 좋은 소식은 뭔가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네.. 그건 선물이라네” 이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리십니까? 며칠 간 비가 많이 왔습니다. 비가 너무 와서 피해가 극심해서 어서 그치길 바랬지요.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뭐였을까요? 없었지요. 다만 하늘이 스스로 그치길 바라는 기도를 할 뿐 이었습니다. 이게 내가 무능력한 걸까요? 또 이런 경우도 있지요. 내가 상대방에게 잘못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과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사과도 안 받고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뭘까요? 안타깝지만 없습니다. 하늘의 뜻을, 사람의 마음도 못 바꾸는 내가 뭘 할 수있을까요? 그런데 이것도 내가 무능력한 것이기에 그런 걸까요?
독서의 아모스는 희망을 말합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산에서.. 모든 언덕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 넘치리라” 라며 주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복음도 예수님이 오셨기에 더 이상 현실의 괴로움에 힘들어만 말고, 새로움을 입고 살아가며 “혼인 잔치의 기쁨” 에 비기며 설명하십니다. 우린 나의 능력으로, 재주로, 재물로 사는 이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이 어렵게 돌아가고, 내 맘대로 안되더라도 참된 신앙과 믿음, 그리스도를 통해 이기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배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는가요? 그런데 왜 불안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