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이사 38,1-8; 마태 12,1-8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필요한 법과 원칙들을 세우고 그것을 잘 지킬 때, 질서 있는 공평한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규범과 원칙만으로 모든 것이 해소된다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그런 것만으로 다 해결되지만은 않는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목숨이 오가거나, 배고픔, 난민의 상황 등 규칙만으로 다 해소되지는 않는 것들이 있지요. 이럴 때 우린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나요?
오늘 제자들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배가고픈 나머지 남의 밭의 밀 이삭을 뜯어먹습니다. 한편으로 애처롭고 측은한 모습인데 바리사이들은 ‘옳다구나, 껀수 하나 생겼다’ 며 예수님께 안식일을 어겼다며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에 예수님이 대응해주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독서에도 히즈키야 임금의 잘못을 질책하자 그는 통곡하며 뉘우치기에 그 애원어린 청원을 받아들여 더 살게끔 배려해주십니다. 여기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요? 강론을 잘했다는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은 가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진짜 가난한 이는 재물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탐욕이 많은 사람입니다. 많은 것에 탐욕스런 사람을 보거든, 그가 온 세상의 재물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를 가장 가난한 이로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서 지휘와 결정을 내리는 힘을 가졌다면 그 힘을 어떻게 부리는 지 봐야 하는데요. 그 힘을 적절히 사용하는지, 아니면 사람을 쥐어 짜는지를요.
오늘은 보나벤투라 주교학자 기념일입니다. 어릴 적부터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로 병이 나은 체험의 인연을 맺어 그 또한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합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영성의 삶. 그로인해 부유한 삶의 진짜가 무엇인지 배웠고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지요. 빚을 지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빚을 권장하며 지출해왔기에 혹독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나의 씀씀이부터 잘 챙기며 진짜 나의 모습을 챙겨간다면, 어려운 이를 도우며 현실의 사랑을 초월하며 현실을 더 잘 살아낼 수 있을텐데요. 그걸 넘어서는 삶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