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일. 신명 30,10-14; 콜로 1,15-20; 루카 10,25-37
하고 있는 일이 내 예상대로 돌아갈 때, 함께 하는 이들이 나의 예측대로 되고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실까요? 내 능력이 뛰어나게 여겨지나요? 으쓱하며 자랑할 만 합니까? 물론 대단한 일입니다. 그게 선견지명이 되었건, 아니면 내가 움직일 만한 능력이 되었건 간에 자부심을 가질 만 합니다. 하지만 벌어지는 결과가 계속 그러할 때, 그땐 어떻게 되어갈까요? 교만해지거나, 다른 이들을 하찮케 여겨지지요. 마치 국민을 개, 돼지로 본다는 말처럼요. 당연하고 우습게 여깁니다. 매번 본인들의 예상대로 흘러가니까요. 이제부터의 삶은 행복보다는 진부함, 경이로움보다는 뻔한 삶의 연속이 되는데요. 지루한 삶이 될 것입니다. 뭔가를 계속 하겠지만 그건 본인의 욕심을 채울 뿐 누군가를 돕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만나야 할 삶은 내 예상대로만 흘러가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우린 인간 세상에 살고 있지만 지금의 현상의 차원을 넘을 때, 비로소 하느님과 닮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성당에 온 이유도 그러할텐데요. 과연 그런 것을 만나고 싶습니까?
오늘 복음의 비유는 우리가 잘 아는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노상강도를 만나 피해입은 이를 만났을 때 3명이 인물이 나오지요. 사제와 레위인은 자기들의 처지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음에도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 외면합니다. 그에 반해 이방인이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사마리아인은 정성껏 돌봐주며 여관에 데려가고 비용까지 내어주며 그를 부탁합니다.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가 지금 같은 어려운 때에 경종을 울립니다. ‘나는 내가 아는 만큼, 배운 만큼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이론 수준의 사랑에 멈춰져 있는가?’ 라고요. 우린 남들에 대해서는 쉽게 폄하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머무는 사람이어야 할까? 아니면 그걸 뛰어넘는 그 뭔가를 만날 자세가 되어있는가?’ 라고요.
우리의 삶은 늘상 새로운 뭔가의 제시를 받습니다. 그에 반해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예전 자기들이 성공한 방식으로, 경험했던 방식 안에서 결정을 내리곤 합니다. 경험치를 믿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상황은 꼭 내 예상대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사랑, 차원높은 사랑이 내 안에서 나오려면 이미 배운 주님의 사랑을 잘 받아서 내 밖으로 뽑아져 나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뻔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데요. 늘 새로움의 삶을 통해 주님을 닮는 경험을 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