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일.

2022. 7. 17. 오후 3: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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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6주일. 창세 18,1-10ㄴ; 콜로 1,24-28; 루카 10,38-42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 뭐라도 바삐 움직여야죠그렇지요. 가만히 있는다고 누가 뭘 해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고요. 세상을 주관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과연 지금이 움직일 때인가? 가만히 있을 때인가?’ 를 아는 방법이 있을까요?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세상사는 게 막막하긴 도시인이나 농어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흙 밑에서, 바다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모르기는 매 한 가지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믿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심기는 하지만 그걸 주관하여 결실을 맺게 해주는 것은 땅이라는 사실을요. 그 해 풍년이 들건, 흉년이 오건, 내 바람대로 작물이 많이 수확해도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해 손해를 보더라도, 그들은 내년에 또 심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삽니다. 그럼 우린 하느님을 어느 정도로 믿고 있나요?

 복음을 보겠습니다. 음식 준비로 바쁜 마르타와 가만히 예수님 말씀을 듣는 마리아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칭찬하시기에 요즘말로 갈라치기 편드는 것처럼 본다면 오해이지요. 우리에겐 두 가지의 모습이 공존합니다. 활동과 기도입니다. 한쪽으로만 편중되고 쏠릴 때, 현실성은 떨어지고 내 삶은 망가집니다. 과연 나는 잘 기다리고 응시하며 제 때에 실천으로 옮기고 있습니까? 1독서를 보지요. 아브라함이 더운 대낮에 앉아있습니다. 그러다 자기 앞에 3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면서 귀한 사람이라고 여겨 음식대접을 하고요. 이에 내년 이맘 때에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여기서 이런 물음이 생기죠. 과연 아브라함은 그들이 귀인인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런 것은 누가 가르쳐준다고 알아차리는 게 아닙니다. 평소 기도하며 실천한 삶이 자기도 모르게 솟아나오는 영감입니다. 그저 배운다고 생각대로 되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린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아나가야 합니다. 그저 머리로 생각하고 마는 차원이 아니라, 곱씹고, 되새기고, 적절한 타이밍이 지금인지 아닌 지를 몸으로 부딪히면서 살 때, 드디어 나도 모르게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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