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일. 창세 18,20-32; 콜로 2,12-14; 루카 11,1-13
여러분은 사랑을 갖고있습니다.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요. 그러면 그 사랑을 처음에 어떻게 배웠고, 어떻게 유지, 성장시키고 있습니까? 아무래도 처음 배우고 접한 사랑은 가정에서부터였지요.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 형제 자매와 사귄 사랑이, 점차 친구, 이웃, 애인, 선후배로 넘어갑니다. 그러면서 더 범위가 넓고 깊은 사랑을 배워나가지요. 물론 안타깝게도 요새는 건강한 가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 잘못은 아니지만 한쪽 부모와 사는 경우도 있지요. 이것은 동양뿐 아니라 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서양에도 다른 것은 몰라도 ‘가족사랑’은 끔찍히 챙깁니다. 여기서 자연스레 배웁니다. 부모-자녀간의 신뢰와 사랑을요. 비록 다른 이들이 나를 몰이해하더라도 여기에 상처받지 않고 예전에 받았던 사랑을 되새기며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곤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나는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랑을 못 받았다면 얘기는 좀 달라집니다. 사랑의 요구가 절실한 유아 시절에 그런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어른이 될수록 자신을 함부로 대하거나, 삶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는데요. 이런 것을 잘 알기에 우리 교회도 하느님-인간 사이의 인격적 관계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요. 오늘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대화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는 모습. 그리고 복음의 예수님에게 청하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 들려옵니다.
여기서 쳐다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사랑을 막연하게 개념화시킨 것이 아닌 애절하고 절실한 사랑을 만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겠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이 자신을 낮추며 말씀드립니다. “소돔 성읍 안에서 의인이 쉰명이 있다면.. 45명이 있다면, 마흔 명이 있다면, 서른 명이 있다면, 스무 명이 있다면, 열 명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멸하시겠습니까?” 라고 묻지요. 자칫 말장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상황은 매우 급박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계속 사람 숫자를 줄여나갈 수 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심정도 이해갑니다. 자기가 보기에도 그 성읍 안에는 의인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반증이 되는 발언입니다. 그의 애절함, 간절함은 사실 사람을 살리고픈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그가 줄곧 졸라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여기에도 과연 우린 주님께 무엇을 얼마나 매달리며 간절하게 청하고 있는가?를 보게 합니다. 당신과 사랑을 쌓아 나가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 우리의 현실도 만납니다.
어린 시절 운 좋게 좋은 부모를 만나서 좋은 사랑을 받았다 하더라도 성장하면서 상처도 받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단절, 불신 등을 경험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점차 닫아걸게 만듭니다. 애절함, 간절함보다는 ‘내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해?’ 하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더 앞에 내세우기도 합니다. 왠지 부탁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고, 괜히 폐 끼치는 일이라 여기면서요. 하지만 이런 것도 아십니까? 원래 사랑은 폐 끼치면서 시작되는 거라는 걸요. 사람의 사이는 항상 그렇습니다. 누군가 내 마음의 공간에 허락없이 들어오고요. 내 시간을 침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부담스럽습니다. 뜻하지 않게 불쑥 들어오는 침범 같은 방문이 달갑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러면서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길에서, 직장이나 학교에서, 누군가 우연히 내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합니다. 내 시간과 공간에 누군가가 들어옵니다. 물론 영 못마땅하면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획되지 않았던 그 만남은 나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같이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많은 이들이 일부러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문득 다가온 것들이 오히려 우릴 초대하고 더 좋은 쪽으로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비록 내 계획에는 없었지만 오히려 나를 더 나은 쪽으로 인도해주는데요. 세상엔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반대로 말해야 할 것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매달리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고요. 여러분은 어떤 사랑을 만나고 싶나요? 저도 그렇습니다. 서로를 살리는 감동적인 사랑을 만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