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수요일. 예레 31,1-7; 마태 15,21-28
요사이 사람들이 여기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비록 가진 게 없어도요. 그건 바로 자존심입니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입니다. 여기서 비슷하게 쓰는 헷갈리는 용어가 있는데요. 그건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 입니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기에 성숙한 이의 마음 씀씀이고요. 자존심은 경쟁하면서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라서 남한테서 존중을 바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이라면,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자존감 위에다가 자존심을 올려놓을 때 자신을 자랑할 만한 것을 드러내어 비록 남에게서 인정을 받지 못해도 우울하게 살지 않고 꿋꿋하게 살 수 있지만, 반대로 자존심 위에다가 자존감을 올려놓으면, 자칫 안 좋은 반응에 나 스스로 무너질 수 있는데요.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오늘 복음에서 지켜볼 여인의 자세 때문입니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습니다. 헌데 오늘 복음의 여인이 그렇습니다. 외면과 냉대, 차가움과 무시를 당합니다. 그것도 예수님에게서요. 자존심을 세우는 이라면, 충분히 화를 낼 만합니다. 여기서 옛날 문헌을 좀 보겠습니다. 제갈량의 저서 <장원(將苑)>의 지인성(知人性)편에 보면 사람의 본성을 파악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1. 시비를 물어 그의 뜻을 관찰한다. 2. 언변으로 몰아 그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핀다. 3. 계책을 물어 그의 지식을 관찰한다. 4. 재난이 닥쳤음을 알려 그의 용기를 관찰한다. 5. 술에 취하게 해 그의 본성을 관찰한다. 6. 재물로 유혹해 그의 청렴함을 관찰한다. 7. 일의 기한을 두어 그의 신용도를 관찰한다... 왜 이렇게 할까요? 기분이 나쁠 걸 알면서도 말이죠. 사실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 대다수가 모르는 이들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잘 살펴야 합니다. 모르면서 뭔가 해주다가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길에서 몸이 얼어있던 새끼 뱀이 불쌍해 품속에 안았다. 얼마 후 몸이 녹은 뱀이 날 물고 말았다.’ 뱀이 어떤 성질인지 모르면서 잘해주지 말라는 얘기이지요.
다행히 여인은 자신의 간절함을 바탕으로 잘 이겨내면서 주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장 받을 자격이 없던 이방인이었음을 본인 스스로도 알았을 것이구요. 그걸 이겨냈는데요. 우린 어떻습니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간절함과 정성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