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일. 집회3,17-29; 히브 12,18-24ㄱ; 루카 14,1-14
뭔가 임무를 맡았을 때 생기는 현상 중 하나는 ‘잘해내야 한다’ 는 생각에서 오는 간절함과 압박감입니다. 당연히 잘해내고 싶고요. 원하는 것을 얻고 싶습니다. 헌데 그게 되려면 하나 더 염두해둬야 할 것이 있지요. ‘그것을 하면서 생기는 위험요소, 부담감, 어려움을 따져볼 때, 나는 과연 견딜 수 있는가?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 말씀들은 “자신을 낮추고 온유하게 행하고” “너에게 오히려 보답할 수 없는 그들로 인해 행복을 얻으라” “내 멍에를 메고” 즉 주님의 십자가를 메고 행하라십니다. 여기서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난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데, 내가 있는 자리에서 닥쳐올 것들이 만만치 않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는 나의 삶을 어찌 살아내고 있는지 바라볼 필요’ 를 느끼는데요.
나는 단지 해야 할 ‘그것’ 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의 처신과 행동 결과가 몰고 올 파급효과까지 염두해야 합니다. 당연히 생각한 의도대로 흐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당의 단체장 역임을 맡을 때 그런 일이 발생합니다. ‘나는 부담스러워 안 해야지..못 하겠다고 말해야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고스란히 나의 표정으로 행동으로 나오게 되면 신자들에게 이것이 전염되면서, 다들 피하고 도망가기 바쁜 현상이 빚어집니다. 제일 위험한 생각이 이것이죠. ‘나만 아니면 돼’ 이런 사태는, 작게는 단체를 좀먹게 만들고, 공동체는 와해의 수준으로 흐르게 됩니다.
우리의 성인들은 하나같이 껴안으셨습니다.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힘든 티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자세는 마치 미국 호돈의 소설 ‘큰 바위 얼굴’처럼 남들이 인정하는 영광에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요. 그들을 지금도 여전히 칭찬하며 본받아야 한다고 말들을 합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호흡을 길게 하고 멀리보면서 나의 삶을 보살펴 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