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주간 수요일

2022. 8. 16. 오후 8: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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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0주간 수요일. 에제 34,1-11; 마태 20,1-16

 우린 내가 맡고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보살피고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저도 여기에 대해서는 늘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이기에 대답하기 부끄럽습니다. 특히 사목자는 참 목자의 사명을 위임받아 하느님이 맡기신 양 떼를 돌보는 사람이고요. 마찬가지로 교우분들도 각자 자기의 영역에서 누군가를 돌보면서 책임지는 사람들인데요.

 오늘 독서와 복음의 내용이 그랬습니다. 독서는 목자들이 자기 먹을 것은 챙기면서 정작 자신이 맡은 양은 보살피지 않은 것에 대해 쓴소리를 하십니다. 복음에는 하루 벌이로 먹고 살아가는 노동시장 노동자들을 찾아 저녁까지 일없이 서성이는 이들을 찾으면서 일꺼리를 제공하십니다. 여기에 대해 현실적인 불만도 나옵니다. 일당을 줄 때, 아침에 온 사람과 저녁에 온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에 대해 요즘 시각으로 형평성이 어긋난다고요. 그리고 목자들이 양을 보살피는 문제에 대해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얘기하며 시대가 변했기에 대량해고사태나 비용을 절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요. 하지만 이런 사태는 농사를 짓던 때에서 공업이 발전하던 산업혁명 때도 이런 발언은 있었습니다. 그게 벌써 18세기 중반입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노동자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분은 어떤 해명을 하시겠습니까? 여전히 현실적으로 힘든 사람이 우리 곁에 있는데요.

 1891년 레오13세 교황님이 쓰신 새로운 사태문헌이 나온 지 백년 후, 1991년 우리나라에서 그 문헌에 대해 심포지엄을 연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지금과 비슷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빈익빈 부익부 사태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는 때에, 교회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오해받아서는 안된다. 보편적인 진리는 자신의 위치에서 각자 심각하게 바라보며 자신을 낮추고 종의 신분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이 필요한 시대라고요.

 일하고 싶어하고, 일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도와주고 구원해줄 것인가? 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가 그들을 도우라고 있는 것이지요. 사목자가 본당에서 숙식하는 이유가 그것이죠. 출퇴근이 따로없이 맡겨진 양들을 돌보기 위해서입니다. 양들이 원하면 만나라고요.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만나는 이들을 그냥 일로 만난 사이로 보지 말고, 맡겨진 이들을 도우라고 있는 것이라면, 우린 눈빛부터 달라질 수 밖에 없는데요. 우리의 능력을 그저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함몰시키진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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