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일.다해

2022. 8. 6. 오후 8: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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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9주일

 우린 뭔가 만나고 싶습니다. 나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를 말이지요. 나보다 큰 차원을, 무언가 나를 압도하는 그것이 나를 도와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이와 비슷한 말씀이 마태오 복음 11장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묻지요.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이 질문은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 모든 예언서와 율법에 예언된 것을 곧 만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 희망을 이뤄줄 분은 바로 예수님임을 의미하지요. 여러분도 여기에 동의하시는지요?

 여러분을 움직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기대심리입니다.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그것으로 인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습니다. 그래서 선거를 통한 투표를 하고요. 로또를 사는 이유도 그렇지요. 하지만 과연 내가 기대한 것이 그대로 이뤄지나요? 사실 세상의 것은 늘 변합니다. 사람도, 시류도, 시대의 평가도, 동산, 부동산도 변합니다. 솔직히 우린 압니다. 나와 관계된 모든 것들이 변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우린 나중에서야 알아차리곤 합니다. 가끔 주식이 폭락하고, 금리가 오르고, 물가가 예전 같지 않고, 다니던 직장을 나와야 할 때 그제서야 내가 실상 변하는 것들에 모든 것을 걸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변하는 것들이 변치 않을 것이라고 날 지켜줄 것이라 여기며 살았던 셈인데요. 변하는 것들을 붙잡고 있으면서 후에 내가 당했다고 여길 때 그 슬픔은 오로지 내 안으로 스며드는데요 

 이제 우린 이런 결론에 다다릅니다. 변하는 것 속에서 살면서 실제로 변하는 것들을 관장하고 주관하는 더 상위의 개념을 붙잡을 때에 그제서야 변하는 것을 조절할 수 있음을요. 그럴 때 나는 더 이상 불편하지 않고요. 심란하지 않고요. 그 안에서 안정되고 편안해집니다. 성가 27번 '이 세상 덧없이' 가사에 이렇게 나오지요. "변치않을 분 홀로 천주 뿐이로다" 여러분도 변하는 것들 속에서 참으로 변치 않는 것을 붙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들으신 말씀들이 그러했습니다. 1독서는 믿음으로써 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어 나왔고요. 복음은 주인이 와서 볼 때 깨어있는 종들 이란 표현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인을 늘 기다리면서 준비했음을 의미하고요. 2독서는 어떠한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 지 확실히 알고 라며 진정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이 무언지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앉아있는 이곳과,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이 바로 그러한 분이십니다. 변하는 세상에서 변치 않을 분을 잘 모시며 여러분을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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