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일

2022. 9. 3. 오전 6: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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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3주일. 지혜서 9,13-18; 필레몬 9-17; 루카 14,25-33

 찬미 예수님~ 인헌동 교우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오게 된 곽희태 스테파노입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꾸벅 인사~) 저는 여러분께 3가지 약속을 드리고자 합니다. 1. 기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2. 강론준비 잘하겠습니다. 3. 사제다운 사제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사제다운 사제란 여러분의 예상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각도에서 주님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걸로 만족하겠습니다.(미사 시작)

여러분은 여러분을 움직이고 있는 힘의 근원을 만나신 적이 있으신지요. 기계는 터빈(Turbine)이나 엔진의 활동으로 그 안에 들어있는 공기, 증기 같은 기체나 물이 흐르면서 터빈의 날개에 부딪히면 축이 회전하여 기계에 동력을 공급합니다. 사람은 심장이 펌프질하면서 피를 곳곳에 보내주면, 피 안에 든 에너지의 영양분이 장기를 활성화시키고 정신과 신체를 움직이는데요. 그렇다면 나의 신앙인의 삶은 어떤 힘으로 움직여지고 있는 지 아시는지요?

 프랑스의 복자, 앙트완느 슈브리에 신부님이란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나중에 재속 사제회인, 프라도회를 세우는데요. 그분의 저서인 참다운 제자에 보면 사제의 모습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눕니다., 나쁜 신부’, ‘좋은 신부’, ‘완전을 지향하는 신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먼저 나쁜 신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캔들을 일으키며, 자신이 죄 중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사람입니다. ‘좋은 신부는 어쩌면 여러분이 바라고 있던 사제상의 모습입니다. 신부로서의 직분을 다하고, 교회의 계율을 잘 지키고, 미사와 성무일도를 바치며, 대죄와 스캔들을 피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착한 일을 하는, 여러분이 보시기에 문제될 것이 없어보입니다. 오히려 칭찬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더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는 완전한 신부, 정확하게 말해, 완전을 지향하는 신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님을 더 가까이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힘을 기울일 열의를 갖고 있으며,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고, 그분의 가난과 온화함, 사랑, 영혼에 대한 열성, 그리고 고통과 십자가를 통하여 그분을 본받기를 원하는 사제 라고요. 그런데 여기서 좋은 사제와 완전한 사제를 이렇게 구분짓고 있습니다. 좋은 사제와 완전해지려고 노력하는 사제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좋은 사제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 우리 주를 더 가까이 따라가서 그분을 본받으려고 진지하게 힘쓰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마음을 쓰며, 세속과 자기 동료들의 취미에 굳이 맞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완전해지려고 애쓰는 사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보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을 그 무엇보다 귀중히 여긴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그분을 가장 충실하게 본받으려고 애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을 지향하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지,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착하기만 한 상태에 머물라고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거룩한 사제는, 착하기만 한 신부들 백 명보다, 더 많은 이를 회개시키고 하느님께 돌아오게 만든다.’. 이 이야기가 그저 신부님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데요. 여러분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어디까지 가보실 예정입니까?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말씀에서 원래 사람이란 존재는, 나약함을 안고 있음을 말합니다.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 것 없고, 저희의 속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라면서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주지 않으시면 당신의 그 뜻을 깨달을 수 없다 고 고백합니다. 복음에도 탑을 세우거나, 적이 몰려올 때, 지금 가진 것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를 따져야 나의 삶이 지속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앞서 저는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나는 나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을 만나신 적이 있냐?’ 고요. 우린 모두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올 때, 가진 것을 버리고, 투신할 때 제자가 될 수 있다 고요. 뭐든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만 하려고만 들면 그저 어느 정도에 머물 뿐입니다. 실력도,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더 높은 차원의 것을 만나려들고, 애쓰고 그 힘의 근원을 들여다본다면, 아무 생각없던 나와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데요. 주님을 통해 참된 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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