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2022. 9. 23. 오전 7: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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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코헬 3,1-11; 루카 9,18-22

 대림절이 다가오면 제단 앞에 색깔마다 다른 큰 초 4개를 켭니다. 몽땅 켜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켜지요. 그것도 색깔이 진한 색부터 점점 밝은 색으로 옮겨갑니다. 이는 구원을 기다리는 4천년을 상징하면서 초 하나당 천년을 상징하는데요. 여기서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럼 누구는 구세주를 보았지만 누구는 기다리기만 하다가 주님을 못 만나고 죽은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의 삶은 소용이 없었을까요?’ 아니지요. 단지 때가 아니었던 것 뿐입니다.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오늘 독서에는 때, 시기에 관한 말씀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이 그 때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잘 못 알아듣습니다. 마치 어릴 적 어른들이 이런 저런 말씀을 해주지만 그게 왜 중요한 지 알아듣지 못하다가 나중에 본인이 어른이 되어서야 그나마 이해하고 알아듣는 것처럼 시간이 걸리구요. 본인의 식견이 열리는 때도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게 한꺼번에 되지 않고요. 된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가 어떤 지 못 알아듣기도 합니다. 세상 일도 그러한데 하느님의 일도 그러하지요.

 오늘 피이트렐치나 비오 신부님 기념일입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으로 유명하지요. 하지만 그의 삶은 힘들었습니다. 주님의 다섯 상처를 몸에 지니며 살았기에 손과 발에 계속 피가 나서 붕대를 감고 살았고요. 의사에게 가도 원인을 모르니 옆 사람도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이걸 누구는 부럽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 본인은 꽤나 번거롭고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비오 신부님도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지 몰라서 혼란했답니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였습니다. 주님의 다섯 상처가 자신에게 생긴 것을 남에게 보이며 증거하면서 주님이 실제로 계심을 알렸습니다. 이것이 남을 속이는 일도 아니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겼기에 주님을 찬미하는 삶으로 살았는데요.

 복음에서 예수님이 묻지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는 질문은 신앙이 그저 모범답안만을 얘기하는 수준이 아니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때, 이 순간에 벌어지는 나의 상황을 헤아리며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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