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6주간 수요일.

2022. 9. 28. 오전 6: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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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6주간 수요일. 욥 9,1-16; 루카 9,57-62

 기도를 하러 잠시 하느님이란 분에 대해 떠올리면 드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건 하느님은 크십니다라는 느낌입니다. 뭐 당연한 이야기지..’ 라고 하실 수 있지만 기도를 하다보면 나는 참 작고, 보잘 것 없지만 하느님은 너무 크시고 방대하시기에 이를 설명하기가 참 막막하다는, 마치 우주적 차원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이는 저뿐 아니라 많은 영성가들이 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크신 분을 대하면서 무엇을 바라봐야 할까요?

 욥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친구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오늘 독서에는 나오진 않았지만 네가 뭘 잘못해서 그렇다. 네가 하느님에 대해 잘 모른다 는 투입니다. 물론 욥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처럼 항변도 합니다. 물론 그런 줄은 알고 있네. 누가 그분과 겨루어서 무사하리오?” 자기보다 크신 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나는 그분의 뜻에 대해 잘 모르곤 합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르고 싶다지만 나를 따라라 는 말씀에 하나같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해주십시오.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게 허락해주십시오.” 맞는 말입니다. 가족들과 제대로 된 이별을 해야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이런 것이 숨어 있습니다. 나는 큰 하느님을 만나러 가면서 과연 하느님과 걸맞는 자세가 되어 있는가?’ 란 점입니다. 사람끼리도 대화를 하려면 서로 어느 정도 비슷한 상대가 되어야 합니다. 너무 급수 차이가 나거나, 수준 차이가 나면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지요. 우리 경우라면 자연 만물을 먹이시는 하느님, 사람의 머리카락 개수까지 파악하는 하느님과 대화하려면 그에 걸맞는 상대가 되는지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보이는, 남들이 여기는 것들에 목을 메지만, 실제로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픈 차원은 현실을 밟고 그걸 넘어서면서 이뤄지는 차원입니다. 그래서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 , 밭을 한참 갈면서 자꾸 다른 것에 몰두하면 마음이 갈라져 제대로 땅을 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라는 사람을 잘 정돈하면서, 내가 만나고 따라야 할 분인 주님을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크신 분을 뵈오려면 나 또한 커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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