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0주간 수요일
동물을 보면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들이 있습니다. 육식동물로는 하이에나, 늑대 등이 있고요. 초식동물로는 누우 등이 있습니다. 이들이 몰려다는 이유는 사냥을 하기 때문도 있지만, 홀로 자립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더 강한 것들이 두렵기 때문이지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세력에 편승하고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줄을 대고, 라인을 형성하고, 뒷백을 믿으면서, 자신이 손해보거나 당하면 편대를 이루어 상대를 혼내고 응징하려 듭니다. 그들도 알고 있습니다. 본인 자신이 실력이 없다는 것을요. 헌데 자립을 하는 동물이나 사람은 고독합니다. 당장 주변에 함께 하는 이들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의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꼭 무리를 지어 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가깝습니까?
오늘 말씀은 자칫 의아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함께 다니며 잘 지냈는데 순간,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라며 돌변합니다.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구원’을 말하려 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개개인의 구원을 구하는 곳입니다. 그동안 인맥을 쌓고, 함께 잘 지내는 것을 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계치유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조상은 조상이고, 나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이 지금 나오는 것은 이제 전례력 상황으로 연말로 접어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종말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느님과 나, 1:1로 대면을 했을 때, 내가 하느님께 무어라 말씀드릴 것인가?를 볼 필요가 있는데요. 그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암 환자들이 6개월이나 1년 간격으로 정기 검사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 검사를 받고 의사의 소견을 들을 때의 심정은 마치 성적표를 받는 느낌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만큼 부담스럽고, 불안하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자신이 관리했다 하더라도 결과가 그렇지 않은 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검사를 해야 내가 잘 살 수 있듯이, 평소 나를 바라보고 돌보는 자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리가 날 대변해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신 생명의 시간동안 어떻게 살았었는지 그분께 무어라 말씀드릴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