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주일

2018. 1. 20. 오후 7: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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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주일. 요나 3,1-10; 1고린 7,29-31; 마르 1,14-20

교우 여러분. 편안하십니까? 오늘따라 여러분께 좀 다른 인사를 드려봤습니다. 편안하시냐고요. 제가 왜 이런 질문을 드렸을까요? 불편한 진실을 말씀드립니다. 솔직히 말해 우린 욕망 덩어리들입니다. 내가 원한 것들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아이나 젊은이들은 본인이 하고픈 것을 원하고요. 남편분들은 하던 일이 번창하길 바라고요. 어머님들은 남편과 자녀들이 내 뜻대로 움직여지길 바라고요. 그럼 저는 어떨까요? 저는 여러분이 욕심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ㅎㅎ.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 안에 깔려있는 욕망들이 꿈틀거립니다. 이놈이 계속 꿈틀거리기에 실제로 편안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편안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원하던 것들이 이뤄져야 될까요? 그건 아닙니다. 이 욕망이란 놈은 뭔가 이미 이뤄졌어도, 계속 다른 곳을 찾아 헤매기 때문입니다. 즉 욕망은 살아있는 생물체 같기에, 원한 것이 이뤄졌다고 해서 안도감이 드는 것은 잠깐이고요. 다음 목표를 향해 계속 움직이는 성질을 갖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정하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아직은 어쩔 수 없기에, 지금의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현실에서 도망갈 수 없기에, 마치 잡혀 산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데요. 그럼 이 불편함을 갖고 살면서, 우린 무엇을 준비해나가야 할까요?

  오늘 1독서와 복음은 내용이 비슷합니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을 향해 외칩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그야말로 갑작스런 폭탄선언입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달라집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루옷을 입고 단식하며 죄를 뉘우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시몬과 안드레아를 보시더니 예수님이 이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열심히 같이 일하던 아버지를 놔두고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 장면까지 들으시면서 무슨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이들도 살기위해서 생업(生業)에 종사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생각을, 자기 일을 포기하고, 관두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런데 지금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런 것이 보입니다. 살기 위해서 해오던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나은 제안이 들어왔을 때, 잘했다고 여긴 것을 내려놓고 있습니다. 물론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밑에 깔린 배경을 봐야겠습니다. 비록 먹고 살기위해 그런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원한 것은 단순히 입에 풀칠하는 정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사실, 더 큰 것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 욕망의 정체는 단순히 자기가 원하는 차원이 이뤄지는 수준이 아니라, 모두를 살리는 차원의 욕망으로 넘어가야만, 우리의 생활이 바로잡히는 것을 아는데요. 그럼 내 생활을 잘 잡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는 모두가 다 할 수 있는, 단순한 방법을 말씀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신앙인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이 공통점에서 출발하여 방법을 제안하겠습니다.

  1. ‘계속 반복하자입니다. 무언가를 잘하는 이들은, 몸에 익을 정도로 반복의 달인들입니다. 운동이나 연주를 해보신 분들은 압니다. 어떤 동작이나 곡을 연주하려면 얼마나 반복해야 가능한지를요. 사람이 매번 다른 생활을 하면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저도 신학생 때부터 매일 지정된 시간이 맞춰 1시간 기도를 드립니다. 반복이 지루함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몸에 익도록 만들어야 비로소 실력이 됩니다. 요행을 바라면 안되겠고요, 이렇게 하면 무엇을 버려야 할 지가 보입니다. 쓸데없는 것들이 보이니까요.

2. ‘반복이 일상화 되면 안정감을 줍니다.’ 내 삶을 조절할 수 있기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습니다. 2독서에 나온 데로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처럼 살 수 있습니다. 즉 감정도 조절할 수 있고요. 크거나 작은 일에 흥분하지 않습니다.

3. 이렇게 해보면 때가 왔는지 아닌 지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삶이 평탄하게 조절되기에, 갑작스런 사건에 조급해 하지 않고요. 담담하게 처리합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기도 쉽습니다. 일단 내가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4. 이렇게 하면 내린 결정에 대해 미련이 없습니다.’ 자신을 평탄하게 다지며 살아오며 내린 결정이기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요. 과감하게 앞길을 향해 달려갑니다.

  어쩌면 니네베 사람들이나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비록 남들과 비슷한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를 조절하며, 더 나은 삶을 기다려온 삶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나, 매일 드리는 미사가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마치 사람이 숨을 쉬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런 행동입니다. 그런 생활을 계속 해나갈 때, 나는 평안한 가운데에서 나의 앞날을 잘 결정하고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시간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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