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간 화요일.

2018. 1. 8. 오후 11: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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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주간 화요일. 1사무엘 1,9-20; 마르 1,21-28

  여러분이 하시는 기도는 절실하십니까? 그야말로 간절합니까? 예전 신부가 되기 전, 부제시절에 저희를 담당하시는 원감신부님은 부제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지시하셨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사제 서품을 받을텐데요. 오늘부터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미사 100번을 연습하고 옆의 자기 이름칸에 기입하세요.’ 라고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앞으로 하기 싫어도 죽을 때까지 미사를 드릴테니, 매 번 드리는 미사를 마지막 미사라고 생각하고 임하라 고요. 좀 지나보니 알겠더군요. 미사를 제대로 드리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정성을 쏟아야 하는 지를요. 그런데 여러분도 그러하십니까?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닐 때, 우리는 더 큰 차원을 만날 수 있는데요.

  오늘 독서에 한나는 아들 하나만 낳게 해달라고 빕니다.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는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그런 간절함을 주님께서 받아들이시는데요.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렸더니 얻었다.” 그러면서 이 사무엘을 주님께 바치면서 이스라엘의 큰 인물이 되는데요. 그녀는 처음에는 아들을 원했지만, 결국 그 감사함을 돌려드리기 위해 아들을 바치는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야말로 자기 것이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데요. 복음에도 예수님이 더러운 영을 꾸짖는 장면은 예수님의 욕심이 아닌,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이런 것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간절하게 바라는 기도가 과연 아이를 통하여 나의 만족을 채우는 차원으로 끝을 맺고 있는가? 아니면 진정 공적인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봐야할텐데요. 한나는 아이를 바치면서, 거저 주신 아이가 주님의 참된 도구로 잘 쓰여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바치고 있고요. 예수님은 악령을 쫓아내며 사람을 살려주시고요. 우린 미사를 거행하며 옆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느님의 나라가 지금부터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바치는 기도의 종점이 어디에 가 닿아있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나의 만족을 채우는 차원이라면 이제 다시금 바로잡아야 할 것이고요. 모두를 살리는 간절한 기도의 지향이라면 하느님과 우리가 감동하는 차원으로 흐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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