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전 수요일
기도를 하면서 이런 것이 보입니다. ‘사람’ 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하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로 더 대단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 안에 깔린 이기심과 욕심입니다. 이것이 자리잡고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기에 공정하지 못한 경우도 생기고요. 정성어린 감동이 나오지도 않구요. 사랑이 샘솟지 못하기도 하는데요. 그렇다고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우리의 ‘본능’입니다. 나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된 아주 자연스런 본능이지요. 당장에는 손해볼 것 같지 않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데요. 하지만 좀 지나면 압니다. 그것이 결국 최선만은 아니었다는 것을요. 어떻게 보면 우린 갇혀있는 셈입니다. 나의 이기심과 욕심이라는 감옥에 말이지요. 그러기에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이 안되니까요.
가끔 어떤 교우가 이런 말을 해옵니다. ‘고해성사가 부담스럽기에 죄를 고하지 않고 나홀로 가만히 앉아서 죄를 식혀본다.’ 고요. 이런 행동은 화투 영화인 ‘타짜’ 라는 영화에도 나오지요. 화투를 배우고픈 고니 조승우가 편경장 백윤식에게 화투를 설명한다면서 패를 섞고, 화투장을 뗍니다. 그러자 편경장이 말하지요. ‘혼자 섞고 혼자 기리(きり,切り)하고 다하는구나’ 말이 안된다는 것이지요. 누가 도와줘야만 하는데요. 그런데도 ‘죄는 자기가 지어놓고 자기가 용서한다’ 글쎄요.. 이는 마치 이런 경우이지요. ‘내가 심(心)정지가 왔는데 내가 인공호흡을 하겠다’ 는 태도인데요. 그러기에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이 안되니까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도 말하지요.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분을 통해 세례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새로 태어나 성령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대로 사는 출발에 이르렀는데요. 이기심과 욕심에 가로막혀 있는 본능이 우리의 의지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현실에 대해 하느님께 두 손 들어 ‘항복 선언’을 해야겠습니다. 이 선언은 겸손된 자세로서 ‘당신의 오심이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라고 외칠 때 나의 위치도 알 수 있을 것ㄹ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