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전 금요일. 1요한 3,11-21; 요한 1,43-51
시인 정현종의 유명한 시 ‘방문객’ 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실로 사람이란 대상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 있고요. 한편으로 대단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 사실을 모르면 우리의 첫인상이 이를 망쳐놓기일쑤입니다. 쓰윽 한 번 보고 모든 것을 다 아는 마냥 얘기하지요. 그것이 제대로 된 판단이라면 수긍할 만도 한데, 자기의 아집과 경험에 미루어 짐작하기를 반복하면서 별 발전이 없는 사람이 많은데요.
오늘 복음에 나온 나타나엘이 그랬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그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살던 그 촌동네에서 대단한 사람이 나오지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동네 사람이 아니라 타지에서 태어나 멀리서 온 분이라면 어떨까요? 필립보의 말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달라집니다. “와서 보시오” 라며 주님께서 당신을 열어보이시자, 그는 달라지는데요.
겉으로 보기에 별 매력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아는 경험과 지식에서 판단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갇혀 살지는 말아야 하는데요. 사실 이런 모습은 한 동네에서 오래 살던 분들에게서 보여지는 현상입니다. 그러면서 자족(自足), 자기 만족에 젖어살지요. ‘난 잘하고 있다. 별 문제없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데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예전의 것에서 뛰어넘기를 허용하고 받아들일 때, 그 초월적 자세가 결국 나를 살려주는데요. 갑작스런 당신의 초대에 응하기 위하여 우린 나 자신을 얼마나 열어놓고 있습니까? 결국 나는 자신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