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전 목요일
예수님이 세상에 왜 오셨을까요? 보통 이렇게들 답하지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럼 구원이란 것이 왜 필요할까요? 사실 우린, 많은 부분에서 오염되기 쉬운 상황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 말하는 것에 쉽게 귀가 팔랑대거나 또는 자신을 지킨다고 문을 닫아겁니다. 이 세상은 살기 녹록치 않지요. 예를 들어 과자를 사더라도 값이 예전과 같은 줄 알았지만 실은 과자용량을 줄였기에 결국 가격이 올랐다는 것을 알고서는 당한 것을 아는데요. 상대방이 마음 먹고 속이려 들면 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성경의 여러 곳에서 ‘악을 물리치고, 사람을 살리신’ 장면이 나와있듯 여전히 지금도 악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을 숨기고 드러나지 않는 방식을 취하기에 잘 모를 뿐이지요. 요사이도 있지 않습니까? ‘비선실세’ 나 ‘바지 회장’ 이란 말처럼, 자신을 숨기고, 일을 꾸미는 악한 활동이 여전히 있는데요. 악은 이렇듯 교활한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욕심이 많고, 집요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기에, 자연스레 다가와 우리를 현혹시키고 결국 좀먹게 만듭니다. 마치 자주 짓는 ‘소죄’처럼,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치부하고 놔두다가는 결국 우리를 망치는데요. 코헬렛 10장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파리 한 마리가 빠져 죽으면 향수 한 병을 버리게 된다. 그렇듯 하찮은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지혜로 얻은 영광을 물거품으로 돌려버리는 수가 있다.” 파리가 향유 위에 잠깐 앉았다가 가면 괜찮겠지만 만일 이놈이 향유에 맛을 들이다가 빠져죽으면 그 향유를 버릴 수 밖에 없는데요. 마치 우리도 소죄가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져도, 오랫동안 반복해 지으면 영혼은 파괴되고 맙니다.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나의 영혼과 육신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21세기에 무슨 사탄이 있고, 귀신이 있느냐?’ 하고 말하는 분들은 이 세계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분들인데요. 여러분을 겁먹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뇌과학적으로도 풀리지 않는 신비의 영역이 있는데요. 이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독서에도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라면서 악마에게 당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고요. 복음에서는 ‘선한 영’ 의 근원이신 예수님과 요한의 제자들이 만납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요구에 “와서 보아라” 하고 응답하십니다. 즉 ‘직접 체험해 봐라’ 이것이지요. 은밀한 태도를 지니는 악마와 달리, 당신을 드러내 보이신 개방적인 태도를 보면서 우린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주님의 자신 있는 드러냄의 자세를 보며 우리도 더 선한 영을 따라 분별하며 살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