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전 토요일

2018. 1. 5. 오후 11:25:43

글자

주님 공현 전 토요일. 1요한 5,5-13; 마르 1,7-11

기도를 하면서, 강론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기도한다고 항상 주님의 메시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만 들으면 여러분 입장에서는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추운 날 이렇게 왔는데, 들려주는 강론이란 것이 그다지 주님의 것이 섞여있지 않다는 말 같아서 실망하실 수 있는데요. 한편으로는 죄송스러울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곽희태 신부가 기도할 때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고 한다면 저는 교만해 질 것입니다. 일단 제가 잘난 줄 알겠고요. 교우들의 입장을 생각하기보다, 제가 받았다고 여기는 메시지를 강요할 것입니다. 오히려 여러분 입장에서는 힘들 수 있지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느낀 것을 전하기보다, 진정한 교리를 전하는 편이 더 낫다고요.

  세례자 요한은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 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본인을 그저, 주님에 앞서 준비한 사람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적으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만 주님을 알려드리고, 소개하는 정도라면 만족하는데요. 독서도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이들이 아니지요. 물론 개인적인 것도 포함되긴 하지만, 주님의 메시지인 그분의 증언을 전하고 들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사는 맛을 아는 이들인데요.

  어쩌면 자잘한 재미는 없을 수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들과 맞지 않고, 어긋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긋남을 발견하면서 내가 제대로 사는 지, 아닌 지를 알 수 있는데요. 우린 주님의 도구 가 되길 희망하는 이들입니다. 헌데 이 도구가 주인 노릇을 하면 안되겠지요. 강론을 하면서 신부가 빛나면 안되고, 주님의 말씀을 빛내야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분을 알리면서 우리들도 빛난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