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로마 10,9-18; 마태 4,18-22
세상에서 파는 모든 물건들은 이른바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것이 책이나 예술품 등의 창작물이라면, 일정 비용을 작가와 유통업에 지불해야 하고요. 값이 매겨진 상품이라면 그에 걸맞는 가격을 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따르는 이 신앙에는 적당한 가격이 없습니다. 어떤 것은 무상으로 주어지는, 이른바 공짜이고요. 어떤 것은 아무리 돈을 내고 노력을 기울여도 얻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것은 그 상황과 때가 맞아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동안 신앙을 가져온 수많은 이들이, 그런 시간 속에서 얻어왔었고요. 우리 또한 그것을 얻고자 이 시간을 보내는데요. 그야말로 당신이 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 인지도 모르고, ‘언제’ 인지 알 수 없으며, 얼마나 기다리며 노력해야 하는 지도 잘모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고 있습니다. ‘분명 내가 예상하고 생각한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주실 것이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중에 누군가는, 그 때와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면서, 당신의 ‘부르심’ 인 줄로 알아듣는데요.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는 말씀에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라고 나옵니다. 갑작스런 제안에 그들은 움직입니다. 안드레아, 야고보, 그의 동생 요한이요. 여기서 의문을 듭니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동안 해왔던 일을 다 버리고 포기할 만큼, 큰 매력으로 다가온 이유는 무얼까?’ 하는 점입니다. 분명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비록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오길 희망합니다. 단순한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리고, 남도 살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지금의 삶에 연연하지 않겠다.’ 라는 굳은 다짐과 기다림이 그들을 살리며 과감한 행동으로 옮겨갈 수 있었었는데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저는 질문을 드려봅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통해 가르침을 받으시며 그분의 메시지를 들어오셨습니다. 여기서 들었던 메시지를 천천히 음미하신다면, 분명 다음 행동은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 지도 아실텐데요. 이미 복음은 우리에게 전해졌고, 이제 우리의 다음 행보를, 하느님께서 기다리시고 나 자신도 기다립니다. 좋은 선택을 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