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의 날. 셋째 미사.

2017. 11. 2. 오후 3:12:54

글자

위령의 날. 셋째 미사. 지혜 4,7-15; 로마 6,3-9; 마태 25,1-13

  예전 천주교 신자이긴 하지만 그리 열심치는 않으신, 이른바 냉담 중인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방금 들으신 복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분에게 이 비유는 이런 뜻입니다.’ 하고 말하니 그분 반응은 이랬습니다. 에이.. 좀 해주지.. 야박하게..’ 언뜻 느끼기에는 기름을 나눠주지 않는 것이, 야멸차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이렇지요.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있는 게 있고요. 아닌 것이 있는데요. 나의 목숨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고요. 그 인생을 온전히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데요. 오늘 복음은 남이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건데요.

  이 말씀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때야 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알게 되는데요. 단순히 마음의 평안따위를 찾는 것이 아님을 말입니다. 2독서를 통해 세례를 통해 그 분과 결합된 삶은, 더 이상 욕망을 따르는 죄의 종상태를 벗어나, 참으로 영원한 삶을 사는 그분과 하나 되는 삶을 지향한다는 것을요. 그러면서 1독서처럼, 빨리 생()을 마감하는 것이 슬프거나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그분과 어서 빨리 만나는 것이 오히려 은총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라면 오히려 지지부진하게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구차하게 여겨질 수 있는데요.

  물론 생()의 주관자는 우리가 아니지요. 요사이 세상은 존엄사에 대해 말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존엄사는, 본인과 가족들을 생각하여 고통없이 죽어주는 것을 말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존엄사는 인간답게 살다가 불필요한 연명치료 없이 자연사하는 것 이라면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분명 살아있는 시간은 소중하고 귀중한 주님이 선사하신 선물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모두 같은 곳으로 갈 것임을 안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깨어있으면서 지혜롭게 살 것인가? 를 고민하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해답은 어떻게 결론내어야 할까요?

  생명의 주관자,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마음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들여다본다면 더 이상 외면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꺼이 껴안을 때,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아는데요. 그러기에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어느덧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그 현실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