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간 목요일

2017. 10. 19. 오전 11: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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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8주간 목요일. 로마서 3,21-30;루카 11,47-54

  대부분의 사람들은 갖추어진 삶을 원합니다. 예전에는 신혼부부들이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장만해가는 재미를 느꼈지만, 요사이는 빚을 지더라도 일단은 모든 기기들이 완비되어야 된다고 여기고요. 뭔가 완벽하지 않거나, 채워지지 않으면 매력이 없거나 부족한 것처럼 여깁니다. 그런데 유독 종교는 그와 반대되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뭔가 부족하고, 비어있고, 그래야 좀 깊이가 있다고 여기고요. 너무 세련되고 현대화 되면 좀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제도화가 된 교회 안에서 교구 신부로 사는 제가, 교구라는 이 시스템을 마치 부정하는 시각으로 보이실지 모르지만,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교회를 제대로 보고 사랑하자는 입장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회의 역사로 볼 때, 313년에 콘스탄티노플 황제에 의하여 그리스도교가 만천하에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종교의 자유가 생겼건만, 오히려 그런 교회를 떠나 홀로 하느님을 만나러 사막으로 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막의 교부라 불리우는 에바그리우스, 요한 카시아누스 등이었습니다. 왜 그들이 제도적 교회를 등졌을까요? 신앙의 자유를 누리면 모든 것이 합법화되고, 시스템화 되면서 문제없이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참된 하느님을 만나는 데에는 제약이 발생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여기기에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성령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모습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는, 협소한 구석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인데요. 물론 교회는 지금처럼 다져지는 것이 오히려 사막의 교부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나은 면이 있다고 여기기에 이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처음 주님을 만나는 이들에게는 뭔가를 잘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스템마저도 넘고픈 영성을 만나고 싶다면, 어떤 면에서는 제도화된 시스템을 떠나서 보는 자세도 필요한데요.

  오늘 복음에 나온 율법학자들은 그동안 자기네가 지켜온 시스템에 너무 젖어들었기에, 그 너머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몰아댑니다. 아마도 자기 기반을 무너뜨린다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믿는 사람들이었다면. 일단 그것이 말하는 것이 어떤 차원인지를 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고, 다른 통로를 통해 오는 진리를 보는 시각이 열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리보다 일단은 시스템을 더 우위에 두는 삶을 택합니다. 이게 그들의 한계였습니다. 교회가 2천년동안 보내며 여러 사건을 보아왔기에 어떤 면에서는 교회가 아직은 결정을 유보하고 더디게 진행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예민한 사항들이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말합니다.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삶은, 현실만 사는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초월하여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 신앙의 시간을 통해 내 생각을 넘어서는 당신을 만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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