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17. 10. 16. 오후 5:38:06

글자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로마 1,16-25;루카 11,37-41

  여러분께서는 지금 믿고 있는 나의 이 신앙이 얼마나 확신감이 있는 지 아십니까? 더 정확히 말해서,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피부로 체득하면서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잘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십 여년 이상 교우들을 만나면서 제일 안타까운 상황은 이런 것입니다. 막연하게 믿는다 는 사실입니다. 비록 어눌하게나마, 내가 왜 믿어야 하고, 어떤 분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은 식구들에게도 잘 설명을 못하는 현실인데요. 여기서 여러분의 믿음이 시원해지기 위해 잠시 배웠던 것을 복습해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독서에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 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 없습니다.” 라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 세상의 것을 보면서, 하느님을 설명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예전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하느님이 계심을 5가지로 증명합니다. 첫째는 운동 상태의 의한 증명입니다. 세상은 계속 움직입니다. 여기서 이를 움직이는 원인 제공자가 있을 것이구요. 그 원인의 제공자를 찾으려 올라가다보면 그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능동인의 의한 증명입니다. 세상의 모든 원인은, 자체로 원인이지 않습니다. 마치 부모님에 의해 내가 생겨났듯, 나 스스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헌데 홀로 움직이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는 하느님입니다. 셋째. 필연성의 의한 증명입니다. 자연의 산물은 생성,성장,사멸의 단계를 밟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입니다. 만약 우리가 필연적이라면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지요. 그 필연적으로 사라지지 않고 주관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하느님일 것입니다. 넷째, 완전성도 등급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진실하고 고귀한 것이 있지만, 반면 부족하고 불완전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 선한 것의 참여의 정도에 따라, 더하고 덜한 차이가 납니다. 이때 자체로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입니다. 다섯째. 목적론적 증명입니다. 세계의 움직임은 질서와 목표에 따라 움직입니다. 계절의 변화만 보더라도 정밀한 규칙성을 띱니다. 모든 생물은 사수에 의해 화살이 과녁을 향하듯,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이고, 이를 명령할 누군가가 있다면 이는 하느님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런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요. 높은 학력과 좋은 회사를 다닌다고 한들, 이런 설명을 못하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습니다. 그러기에 남을 부러워하고, 남처럼 살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마치 바리사이들이 겉과 속이 달랐던 것처럼 말이지요.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성 이냐시오는 죽기 전 이런 말씀을 합니다. 저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두십시오. 그것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밀이니,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라고요. 그분은 본인이 믿는 분을 통해, 죽음따위는 두렵지 않음을 말했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믿고있는 이 신앙이 더 확신감 있게 와 닿도록 해야 해야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