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일. 이사야 5,1-7; 필리 4,6-9; 마태 21,33-43
다들 각자가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기대치’입니다. 내가 좋아하고 열정을 쏟은 것에 대한 열매와 어느 정도의 보상이 따라오길 기대합니다. 물론 ‘어휴.. 저는 안 그래요. 주는 것에서 기쁨을 누리는걸요?’ 하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또 한편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며 힘들어하는 이유를 보자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님을 보는데요. 그렇습니다. 우린 마음 한켠에 내가 계획하고 열정을 쏟은 사람이나 일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 이 있기를 원하고요. 내가 바란 방식대로 움직여지길 원합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꼭 그렇습니까? 그렇지 못한 데에서 오는 괴로움과 실망감과 함께, 이로 인하여 마음까지 닫아버리는 결론에 다다르기도 하는데요.
오늘 1독서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포도밭을 일구려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서 그 가운데 탑을 세우고 포도확을 만들지만... 좋은 포도가 맺길 바랐는데 들포도가 맺힙니다.” 이에 억울하다는 듯이 하소연을 쏟아냅니다. “자 이제 예루살렘 주민들아, 유다 사람들아, 나와 내 포도밭 사이에 시비를 가려다오!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이에 대한 다음 수순은 이러했습니다. 이른바 ‘가지지 못할 바에야 부셔버리겠다’ 는 쪼로 나옵니다. “울타리를 걷어치우고 담을 허물고 황폐하게 내버려두어 가지치기, 김매기도 못하네 만드는..” 완전 쓸모없는 땅으로 만들지요. 이른바 가진 것을 다 불질러 버리고, 누구도 거기서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가끔 우리도 쓰는 방법이지요. ‘에이~ 걘 안돼.. 포기하자.. 연을 끊어버리자’ 포기하면 깔끔한 것처럼 여겨지지요. 그런데 꼭 그럴까요?
복음도 비슷한 내용입니다. 이번에는 포도밭을 일구는데는 같았지만, 그 일을 대신 소작인에게 넘기고 수확철이 되자, 자기 종을 보내 소출을 받아오게 시킵니다. 헌데 소작인이 소출을 내기는커녕 이제 자기 것인 양 행세합니다. 그래서 밭임자는 끝내 자기 아들까지 보내지만 그를 죽여버립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죽음이 연상되시지요? 그렇다면 밭임자, 곧 하느님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가지고 있던 밭을 없애버릴 것일까요? 아니면 필요로 하는 그 누군가에게 맡길까요?
여기서 우리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바라고 원한 기대치가 어긋나고 있을 때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지요. 일단 여러 방법이 떠올라집니다. 상황이나 능력이 안되어도 무조건 저돌적으로 밀고 갈 것인가?.. 또는 포기하고 다른 것을 알아볼 것인가?.. 아니면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고요.
여기서 저는 바오로 성인이 떠올랐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예수님의 직제자인 12제자도 아니었고요. 예수님을 믿던 사람들을 잡아들인 전력(前歷)이 있던 사람입니다. 그가 아무리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돌아왔다고 하였어도, 실상 다른 사람들은 그와 함께 일하기를 꺼립니다. 자! 여기서 바오로도 고민을 많았을 것입니다. ‘소명은 받았고, 예수님의 복음은 전해야 하지만.. 현재 실상은 나를 받쳐줄 기반도 없고 이 지역 사람들도 나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그는 다른 루트를 찾아 나섭니다. 각 지역의 사람들을 편지로 통해 선교를 하고요. 로마시대가 통치와 정복을 위해 만든, 육로와 수로의 길을 따라서 이제는 오히려 그 길을 선교의 길로 바꿔놓으면서 그는 12제자가 가지 않은 ‘나만의 길’을 가면서 그 일을 해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신이 쏟아놓은 열정과 경험을 통한 바탕이 다 무너짐을 느꼈을 때, 막상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보이진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가 말하는 오늘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줄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주님. 제가 생각하고 예상하는 것을 뛰어넘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야만 제가 제 생각에 가로막혀 살지 않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기도할 때, 내 생각보다 더 나은 것을 보여주시는 당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현실이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르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기서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현실을 타개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린 내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고요, 비록 미처 예상하진 않았지만 우리 곁에 이웃들도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