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일. 이사야 22,19-23; 로마 11,33-36; 마태 16,13-20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뭔가를 알아야만 그것을 할 수 있다' 고요.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이 열심히 배웁니다. 하지만 배우면서 우린 그 때 몰랐던 것을 발견합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구나..무얼 안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또 다시 미지의 영역에 들어선다' 는 사실입니다. 어릴 때는 그랬습니다. 일단 내가 원하는 '그것' 만 알면 된다고 여겼었는데.. 막상 '그 부분' 에 들어서보니, 또 다른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반응을 발견합니다. 그냥 그 부분에서 만족하며 지내거나, 또는 그 부분을 넘어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계속 가보는 사람 등을 말이지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주님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 고 여겼었는데, 어느 정도 안다고 느낀 순간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하지 못하고 갑자기 멍한 느낌이 드는 것을요.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실은 그분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나도 어느 정도 인정' 하기 때문인데요. 물론 베드로처럼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모범답안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실은 주님도 현실을 아시지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온전히 베드로 자신의 생각으로 나온 대답이 아닌, 하느님이 부어주셨기에 말할 수 있었음을요. 이런 사실을 통해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우린 자신의 가진 능력으로 당신에 대해 어느 정도 접근할 수는 있겠지만 당신이 허락하셔야 최종 결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요.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는 마십시오. 현실에서도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요건이 있으니까요. 그 요건이란, 바로 '우리 자신' 입니다.
1독서와 복음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엘야킴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 복음에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결국 이런 결론에 다다릅니다. 나는 착하게도 살 수 있고, 악하게도 살 수 있습니다. 이른바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어줄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열쇠를 당신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분별과 실천을 통해서지요.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당신에 대해 듣고 배웠다면 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주님의 생각을 다 알지는 못할 지라도' 우리의 선택과 지닌 열쇠를 가지고 그분의 영역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고요. 닮아갈 수 있음을요. 자~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