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일.

2017. 8. 12. 오후 3:07:29

글자

연중 19주일. 1열왕 19,9-13; 로마 9,1-5; 마태 14,22-33


  휴가철이 되고요. 일주일의 마지막이 되는 금요일이 되면, 가끔씩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조용히...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조용한 곳에서 좀 지내보고 싶다 그래요. 저도 그 마음 압니다. 그런 생각이 들지요... 그래서 여건이 되어 조용한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래보셨던 적 있지요? 그 다음 어떻게 되셨습니까? 조용함에 젖어들자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긴 너무 조용해..’

  몇 년 전 제주도 옆에 있는 섬. 우도에 휴가를 간 적 있습니다. 대다수가 우도를 하루 코스로 관광만 하고 갑니다. 그래서 낮 동안에는 자전거나 스쿠터 등이 다녀서 동네가 시끄럽긴 합니다. 하지만 저녁 5시가 넘으면, 제주도와 우도를 다니는 유람선도 끊기고, 이른바 아주 고요한 곳이 됩니다. 그렇게 저는 일부러 3일을 우도에서만 지냈습니다. 첫 날의 느낌은 그랬습니다. ~ 참 조용해서 좋다~’ 둘째날은 어 생각보다 너무 조용한데?~’ 셋째날이 되자 .. 견디기 쉽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깨닫습니다. 늘 들리던 소리들이 들리지 않게 되니까 불안감을 휩싸입니다. 조용하면 고요하면 좋을 것이라 여겼지만 실제의 내 모습은 오히려 도시의 소음을 내가 편하고 즐기고 있었음을 알아차리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사항을 발견합니다. 오히려 소음을 그리워할 때, 내가 그동안 애써서 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교회가 침묵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침묵을 통해서만이 나의 상처를 볼 수 있게 해줍니다. 흐르는 물에서는 사물을 비춰볼 수 없듯이, 나 자신을 조용하게 나둬야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알아차리면 내가 받아왔던 상처를 인정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고요. 그동안 여러 소음으로 상처를 무시했었고, 덮어버렸던 현실을 인정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나의 상처를 보기 힘들어하고 애써 안 보려 무시하다보면 그 상처는 이내 점점 더 벌어지고, 갈라진 틈은 깊어지며, 내가 바라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지는데요.

  오늘 독서를 보십시오. 엘리야 예언자가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지만 당신은 바람 가운데에서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 가운데에서도 계시지 않았다. 불 속에서도 계시지 않았다.” 소란스럽고, 시끄럽고, 북적거리는 곳에서 당신을 발견할 수 없었고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처럼 모든 소란이 잠잠해졌을 때 당신을 만나는데요.

  그렇기에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침묵은 단순히 조용한 것이 아닌,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라는 사실입니다. - 즉 주위가 소란스러워도 나는 조용해지고 침묵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정신을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가끔 성당에서 미사나 기도 중에 애들 때문에, 주위사람 때문에 시끄러워 집중을 못하겠다 고 불평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분들은 침묵이 뭔지 모르는 분들입니다. 주위가 소란스러워도 침묵은 가능합니다. 다만 개인적인 훈련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렇게 침묵을 만나면, 그 다음 만나는 것은, 자신 안에 숨어있던 거친 불안함과 소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안에는 여전히 꿈틀거리는 불편한 내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진짜 모습이고, 내가 원한 목소리입니다.

오늘 복음처럼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바람을 말합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주님이 오너라 하십니다만, 베드로는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물에 빠지죠. 우리도 비슷합니다. 당신을 통하여 어느 단계까지 올라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그것을 선택하고 만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주님을 만나더라도 여전히 불안감에 휩싸이는데요. 마지막으로 외적으로 다가오는 소음은 내가 조절할 수 없다하여도, 나는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직면하면서 그것을 다스려 갈 수 있다. 는 점입니다. 사실 마지막에 들려오는 3가지 이론이 침묵을 통해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지켜갈 수 있게 도와줍니다.

 

 사랑하는 개포동 본당 교우 여러분

사실 많은 사람들이 조용함을 원한다면서, 실제로 그것을 만났는데도 여전히 편안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발견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마주 대할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2독서처럼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처럼 조용함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점은,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받아들이기 위해서입니다. 당장에는 자신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이를 인정할 줄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주님이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