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목요일.

2017. 8. 17. 오후 3: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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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9주간 목요일. 여호 3,7-17; 마태 18,21-19,1

  가끔 면담을 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른바 본인 스스로 이미 모든 결정을 내려놓고 시도를 하다가 잘 안된다 는 이야기들입니다. 그 결정 안에는 사실 이런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본인이 평소 해왔거나 생각해왔던 방식과 의도, 스타일 등이 들어있습니다. 물론 우린 각자 개성을 갖고 있기에 그런 것들도 나름 의미는 있습니다. 헌데 문제는 예전에는 그런 방법이 통했는데 이제는 통하지 않다 는 점입니다. 여기에 우린 당연히 해답을 찾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그 해답을 찾으려면 먼저 수반되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 수반할 사항이란, ‘당신은 어떻게 하셨는가?’입니다.

  오늘 복음에 베드로가 주님께 용서에 관한 문제를 들고 옵니다. 사실 용서의 마음이 들게 만들어 주는 것은 누구입니까? 대다수 분이 자기 자신이라고 말하십니다. 물론 최종적으로 용서를 허락하며 내 마음과 행동을 고치는 것은 나 자신이 맞지만, 실제로 그런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옹골찬 마음으로 똘똘 뭉친 고집불통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이런 것을 느낍니다. 용서, 사랑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느님이 그 마음을 불러일으켜줘야 하는구나..그리고 여기에 나도 응답해야 하는구나..’ 라고요. 그 사람들이라고 용서나 사랑을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겠습니까? 여기에 우린 이런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서, 나에게 어떻게 개입하시면서 나는 여기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하는 과정을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느님의 개입과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내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너를 높여주기 시작하겠다.. 먼저 미리 공지하며 알려주십니다. 위에서 내려오던 물이 멈추어 섰다.그렇게 공지한 바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좋아하며 건너가지요. 이건 신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알려주시고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알려주신 가르침이 우리의 현실에서 이루어지길 바라십니다. 이른바 당신은 즉흥적이지 않습니다. 먼저 알려주시고, 시행하시고, 그리고 우리의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헌데 우리는 대다수가 자기 방식대로만 하려고 듭니다. 당신이 무엇을 가르쳐주셨는지를 쳐다보지 않다보니, 당신의 뜻하심과 관계없는 결과를 맞이합니다. 이제 우린 무언가를 하기에 앞서 당신의 방식을 바라보며 나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오류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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