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2017. 7. 26. 오후 3: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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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옛날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옛날 인도에서는 페르시아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었다는데요. 편리하긴 하지만 엄청나게 소란한 소리가 나는 기구였답니다. 어느 날 기마병이 농장을 지나다가 가기 말에게 먹일 물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농부는 두레박을 잡아당겼지만 이내 시끄러운 소리가 귀에 거슬렸는지 말이 우물가로 오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기마병이 말합니다. “그 시끄러운 소리를 멈추게 할 수 없소?” 농부는 대답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물을 마시고 싶다면 시끄러운 소리도 함께 들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이 소리를 통해서만 물이 나오거든요.”... 이 우화의 뜻을 아시겠습니까? 사람들은 고통이나 결점이 없어져야만 편안함이 찾아온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이런 것을 알려줍니다. 그런 것이 없이는 관계도, 깨달음도 없다는 사실을요.

  독서처럼 광야의 체험이 있기에 그 속에서 만난, 메추라기 떼와 만나를 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고요. 복음처럼 평소 자신을 잘 관리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한 이들에게는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선물을 허락하십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성모님의 부모님인 요아킴과 안나 성인도 40일을 단식하며 애타게 기도했기에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현실에서 기쁨을 허락해주시는데요.

  앞서 우화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하려는 일이 마냥 편하지 않습니다. 내 맘같지 않고요. 결점과 고생이 눈에 뻔하게 보여서 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을 겪어야만 사람들과 주님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어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고요. 내가 내 속에 갇혀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이런 셈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을 아주 주의 깊게 듣는다면, 나는 예전 같지 않고 변화될 수 있다.’ 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냥 내 방식대로 흘려 넘긴다는 데 있습니다. 흘려 넘겨듣기에 별로 와닿지 않는다고 여기고요. 듣고 싶은 것만, 알고 싶은 것만 얻으려 하기에, 실은 그 과정을 통해서만 진정 얻을 수 있는 것을 놓치고 마는데요.

  십자가, 좁은 문이란 표현처럼 무언가를 얻는 길은 고통과 어려움이 수반됩니다. 요아킴과 안나 성인도 그 길을 걸었기에 기쁨을 누릴 수 있었듯이 우리 여정의 길도 그러한 길을 꾸준히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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