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주간 금요일. 2고린 4,7-15;마태 5,27-32
우화 잘 쓰기로 유명한 안소니 드멜로 신부님의 글이 생각납니다.
'이집트에 살고있던 한 수도승이 유혹 때문에 너무 괴로워 힘들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독방을 버리고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가기로 마음 먹으며 신발을 신고있는데 그리 멀지 않은데서 또 다른 수도승이 역시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수도승이 그 수도승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그러자 그 수도승이 답합니다. '나는 당신의 자아입니다. 그런데 나 때문에 이 곳을 떠나는 거라면 알려줄 게 있어요.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나도 늘 당신하고 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라며 이야기는 끝납니다.
그렇지요. '나' 라는 사람을 깊숙히 들여다보면 여러 다양한 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 와 화해를 잘 하며 살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이 그러하지요. '성' 이라는 놈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놈이고요. 갑작스레 불끈대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것 때문에 죄스럽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얘와 화해를 잘못한다면 주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요. 그래서 "잘라 던져버려라" 는 말씀에 불편하고 위축될 수 있는데요.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것이 보입니다.
'구두가 발에 맞을 때 발이 잊혀지고요.
띠가 허리에 맞을 때 허리가 잊혀집니다.
그리고 만사가 조화를 이룰 때 자아는 잊혀집니다.'
금욕을 하겠다고 참고 애쓰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있습니다. 즉 '나' 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독서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는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죽여야 할 것과 살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차이를 잘 모르면 죽일 것을 살리거나, 살릴 것을 죽이지요. 하지만 '조화로움' 을 잘 알면 나의 상태에 대해 대화가 가능하고요. 몸과 마음과 대화 속에서 중재가 이뤄지며 선택을 잘 하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남과 싸우는 경우' 가 많지만 신앙인들은 '나 자신과 전투와 대화' 를 거듭해가면서 나아갑니다. 보통은 이런 시간을 견디기 힘들기에 덮어버리거나 묻어버립니다만 결국 우린 그것을 해야 합니다. 잘 하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