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일. 사도 8,5-17; 1베드 3,15-18; 요한 14,15-21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독서와 복음 말씀은 모두 하나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활동’입니다. 복음에서는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 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라면서 그 분의 정체를 말씀하시고요. 1독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면서, “그 때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하시면서 그 활동이 나오고 있고요. 2독서는 예수님을 지칭하면서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하시며 영의 활동이 우리를 어떻게 살려주시는 지 말씀하십니다. 자~ 그런데 이 말씀이 와 닿습니까? 와닿지 않다고 여겨진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뭐가 힘들고 껄끄럽기에 그 분의 활동을 기다리지 못하고 둔감증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까요? 사실 현실적으로 이런 면 때문에 많은 분들이 기도하는 시간을 들이지 못하는데요. 여기서 처음 제가 해보았던 방식을 소개하면서 여러분도 그 방법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신학교에 들어가면, 신학교 내규에는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매일 하루에 30분씩 시간을 내어 감실앞에서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실 하루에 30분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만, 아침 6시에 일어나, 미사하고, 식사하고, 맡은 구역 청소하고, 9시부터 강의 듣고, 낮에는 세미나 준비 및 리포트 써내고, 지정된 시간에는 모두 같이 공동기도 하면서, 무조건 밤 11시에는 자야하는 규칙적인 시간 속에서 따로 30분을 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뭔가 좀짧다..는 느낌이 들면서, 30분만 하고 끝내니, 뭔가 흐름이 끊기고, 시간상 억지로 마쳐지는 하는 듯한 느낌’ 이 저를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1시간을 합니다. 사실 1시간을 내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포기해야 가능합니다. 노는 시간을 포기하던가.. 다른 잡다한 시간을 포기하던가.. 등 말이지요. 그러면서 젖어드는 시간동안 기도의 흐름을 타면서 가끔씩 메시지가 떨어졌습니다. 이제부터 드리는 말씀은, 기도하면서 느낀 주관적인 느낌이기에 모두가 이렇게 해당되지는 않는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저에게는 그 메시지가 단어나, 구절, 또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문장으로 떨어집니다. 사실 저는 매일 강론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강론은, 듣는 분을 고려해서 논리적인 문장으로 매끄럽게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무리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묵상기도는 다릅니다. 이건 굳이 표현하자면 이른바 ‘날 것’ 입니다. 어디로 튈 지 모르고요. 내가 이것을 주체할 수도 없습니다. 주관자는 주님이니까요. 그러기에 일단 상황을 지켜보며 바라봐야 합니다. 어디로 흘러가는 지도 나중에서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떨어진 메시지라는 것도, 언뜻 보기에 그 날 독서, 복음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면, 암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가 또 시작입니다.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처럼 냄새를 맡고, 혀를 굴려가며 음미하고, 계속 들여다보면 그 자체에서 풍겨 나오는 맛과 향기가 뭔지를 알아차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때의 느낌을 그냥 결론짓고 말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며칠 있다가 또 다시 음미하면, 밑에 깔려있던 것들이 또 나옵니다. 마치 처음에는 예수님의 정면만 보았다면, 나중에는 옆면, 윗면, 마치 드론으로 사방팔방을 찍는 광경이 보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이런 경지까지 이르면 기도가 재미있을 수 밖에 없고요. 성령의 활동의 무한함에 대한 감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는데요.
사실 강론 시간은 주관적인 느낌을 말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이런 말씀을 드린 이유는, 성령의 활동의 무한함을 말씀드리고 싶었고요. 여러분도 그런 체험을 해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사실 기도란, 남들이 보기에 앉아있으면서 아무 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구요. 시간낭비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과 싸우기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요. 어떤 때는 말로만 듣던, 미지의 세계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또는 현실적으로 닥친 문제에 대해 방책을 당신께 여쭙고, ‘과연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며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린 당신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연스레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우린 이걸 하려고 모였습니다. 그러기에 꾸준하게, 지치지 않으시면서 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