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간 금요일. 사도 13,26-33; 요한 14,1-6
한 나라의 대표를 뽑고보니, 당연히 예전의 대표들과 비교 및 대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예수님이 보여주신 방식에도 눈길이 갑니다. 이 짧은 시간에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이런 고사성어가 생각납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입니다.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한다는 뜻이지요.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만드시고, 완전치 않는 인간을 만드시고서 우리의 부족한 생각과 행동을 아시고 받아들이셨기에 모든 것을 껴안고 가는 그 모습 말입니다. 복음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당신 자신이 직접 떠안고, 마련해주시고, 직접 이루시는 참다운 책임자의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까? 이런 분을 만나면서 고마움과 감동을 동시에 받으면서 이런 생각도 떠올려봅니다. ‘과연 나는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을 이렇게 대해주고 있었나?’ 하는 물음을 말입니다.
많이 부족했습니다. 바쁨과 여유 없음을 핑계로 함께 하질 못했구요. 어려운 이들의 여건과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충분히 마음을 주지 못했고 함께 해주질 못했음을요. 더욱이 가장 가깝다는 이들에게도 그러질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독서에 나온 것처럼 “성경에 기록된 것을 이행하시고 죽은 이들을 다시 일으키시고,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후손들에게 실현시켜주시는” 모습에서 든든함과 삶의 모범으로 따라야 할 분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오늘 저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기보다는 ‘감탄’을 자아내고 싶습니다. ‘여태껏 이런 분을 내가 모시고 있었구나. 이런 분처럼 하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구나’ 하는 희망도 가져봅니다. 결국 우리의 사랑은 이렇게 가야 하겠지요. ‘당신을 닮아 책임질 줄 알고, 미리 먼저 마련하고, 준비하고, 도와주고 이끄는 그런 사랑’ 을 말입니다. 우리도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이들부터 시작하여, 나중에 만나게 될 미래의 그 누군가에 이르기까지 그 사랑을 퍼뜨려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먼저 주신 사랑을 미리 나도 준비하면서, 지치지 않게 전달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