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화요일
어제 아는 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예상으로는 꽤나 슬퍼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표정은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내심 의아해 하고 있었는데 먼저 말문을 열어놓더군요. ‘예전 영성가들은 급작스런 일이 다가와도 불안하거나 하는 심리적인 요동이 없이 오히려 잔잔하고 편안했다는데 지금 제 심정이 그런 것 같아요.’ 그동안 병수발을 하며 온갖 일을 다 치러오면서 별별 일을 다 겪으면서 오히려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데요. 담담한 말투나 표정을 보아하니 모든 것을 겪고 난 사람의 모습처럼 보여졌습니다. 여러분도 이 심정에 이해가 가십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그런 환경이 나옵니다. 바오로는 돌을 맞아가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고요. 예수님은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하시면서 “이 세상의 우두머리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라며 참다운 승리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오로도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면서 사람들을 격려하시는데요.
우리가 여기에 왜 모여와 있을까요? 이기기 위해서이지요. 그럼 무엇으로부터요? 현실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똑똑하다는 말 들으려고, 참으로 세상의 시스템에 순응해왔습니다. 그 시스템이 잘 된 것인지, 옳은 것인지에 대한 분별을 뒤로 한 채, 일단 말 잘 듣는 모범생처럼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한계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낡은 시대의 유물처럼 그 때 그 때마다의 다른 시대에 편승하는 진리는 참된 진리가 아니지요. 이제 그것을 알았다면 집착할 이유가 없지요.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우리에까지 이르는 후손들이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알려주신 참된 메시지, 그 기쁨의 원천을 알아갈 때, 지금 당장에 느껴지는 감정에 동요됨 없이 오히려 나의 삶을 기쁘고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 말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오신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불변하는 참된 것을 붙잡으며 이겨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