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간 금요일.

2017. 4. 28. 오후 5: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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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주간 금요일. 사도 5,34-42;요한 6,1-15

  하느님을 믿는 우리에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유혹은 과연 이 사태를 신앙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흔들림입니다. 되어가는 것은 더디고 의심은 커져갈수록 뭔가 안정된 것을 원하기 때문에 쉽사리 세상이 쓰는 방식을 쓰려고 시도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필립보의 말처럼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런 말에는 그럴듯한 이유도 담겨 있습니다. 해본 적도 그런 경우를 만난 적도 없고, 앞으로 그것이 어떻게 될런지도 모르니까요. 아무리 큰 예언자나, 신부님이나 수녀님들도 앞일은 모르지요. 예전에 세례자 요한도 그랬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예수님을 향해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말하지만, 좀 지나서 제자들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시키지요. 과연 오실 분이 바로 당신이십니까?” 한편으로는 공감도 갑니다. 아직 주님이 어떤 분인지 다 드러나지도 않았고 그분의 끝을 보지도 못했으니까요. 몰라 뵙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1독서의 상황이 그랬습니다.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율법교사인 가말리엘에게 새로운 상황이 발생됩니다. 그동안 율법을 믿고 가르쳐왔던 그에게, 베드로 등의 사도들이 했던 행동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가득차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든 이들을 고치고, 복음을 전하고, 자신의 소유물을 나누면서 가난한 사람도 없고, 이를 믿는 이들이 늘어나니’.. 가말리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겠지요.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뭔가 정리가 필요했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저들의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말리엘 본인도 앞으로의 일이 어찌 돌아갈지 모르니까요.

  여기서 이런 것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 너무 딱 붙어있으면, 일이 해결될 국면을 보지 못하는 것을요. 예를 들자면, 아직 내 자녀가 어린데도 아이가 커가는 과정이 너무 더디게 느껴져서 아이를 다그칩니다. 그리고 부모 자신도, 그런 상황을 처음 접했기에 마음만 급하다가 나중에서야 깨닫지요. 그럴 필요가 없었음을요. 결국 내 마음이 급했었고, 아이는 성장과정이었다는 것을요. 부활을 맞이하면서 그 분께 맡기는 자세가 예전보다 더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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