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간 목요일
지금이야 국가나 사회에서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아픈 이를 돌보고 복지를 관여합니다만, 이런 시스템이 갖춰지기 훨씬 예전에는 그야말로 교회가 나서서 해온 것들이었습니다. 수도원에서 병원을 설립하고, 학교를 세워 교육시키면서 말이지요. 그동안 국가는 전쟁이나 영토 확장 등에 더 신경을 쓰다가 국민에게 관심을 가진 지가 불과 100여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이젠 교회가 하던 것을 국가에게 넘겨주는 차원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빈 구석은 많은데요.
어제 오후 명동성당에서 사회 사목을 담당하는 신부님들의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 중 어떤 자매님이 당신 본당에서 해오던 것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눈에 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여러 어려운 이들을 도우면서 생활보호대상자를 대상으로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을 교육시키고 있다고요. 사실 몰라서 혜택을 못 받고 있는 이들이 많은 형편이지요. 게다가 관심도 부족하기에 잘 도와주지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부자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지만, 정작 자기 집 앞에서 구걸하던 라자로에 대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자기가 죽고나서야 고통스러워 소리치고 있지요. 아마도 그 부자의 관심 상태는 1독서에 나온 첫 구절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양 여기는 자”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눈에 보이는 것, 나의 이익에 관심이 많지요. 그러다보니 주위 어려운 사람들의 부르짖음은 그야말로 남의 일이 되고 맙니다.
제게도 그런 일이 다가왔습니다. 바로 어제 저녁 미사 후였습니다. 그 때 제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혼인면담과 관면혼을 해야하는 분주하던 상황이었던 때에, 갑자기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옷은 허름하고, 노숙하는 분처럼 치아는 없는 상태이신 분이 다가와, 밥 한 끼만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막 혼배를 준비해야 했기에 혼인당사자는 기다리고 있고요. 사제관 식복사도 퇴근하고 없었습니다. 저는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식사비를 약간 드리면서 기도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리니 고맙다면서 가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을 듣고, 달리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불현듯 다가오는 이웃의 요청에 대해 우린 잘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부자처럼 살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