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7주간 금요일

2017. 2. 23. 오후 6: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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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7주간 금요일. 집회 6,5-17; 마르 10,1-12

  요즘 같이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사람으로 풀어야만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친구가 필요하고, 배우자가 필요하고, 나를 이해해 줄 그 누군가를 찾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유대관계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 문제의 이유는 이런 것이죠. 결국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사귀었다.’ 는 사실을 확인할 때입니다. 관계를 맺으며 위로를 얻고, 위안을 받고 싶지만, 결국 상대방도 나와 같은 것을 원하기에 이 관계를 맺었지만, 실제로 어떤 문제가 발생되면 얼른 관계를 결론짓고 싶어합니다. 이미 내 안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니까요. 편안해지고 싶다. 해방되고 싶다그래서 편하게, 얼른 매듭을 지어 버리고 싶어합니다. 그게 헤어짐, 정리나 강압이죠.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바리사이가 와서 묻지요.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이 말은 부인이 남편으로 버려도 되냐?’ 와도 같은 물음입니다. 이미 우리 뿐 아니라, 세상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생기면서 지금까지도 벌어지는 문제입니다. 물론 쉬운 방법은 이것이지요. ‘서로 헤어지는 것입니다. 어때요? 만족하십니까? 헌데 왜 별로 만족스럽게 들리지 않을까요? 제가 신부라서요?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서요? 아니면 아니 뭐 그렇게 까지는...’ 하는 주저함입니까? 뭘까요? 모세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했기에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다지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사이 연인 사이의 데이트 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왜곡된 연인 사이의 문제는 이런 이유이지요. ‘애정나 자신의 만족을 채우려는 소유욕사이의 갈등 때문입니다. 소유욕은 다 아는 이야기이고요. 참된 애정이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대가 나에게 아무런 이익이나, 기쁨을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대를 계속 떠올리는 힘이며, 상대에게 언제나 마음을 내어주는 힘이 애정이지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애정과 소유욕의 차이가 불분명해집니다. 이건 아이와 부모 사이에서도 벌어집니다. 왜 부모가 아이를 심하게 야단치고 심지어 폭력까지 가할까요? 과연 널 위해서야~’ 라는 말이 그리 와 닿지 않게 들리는 이유는 뭘까요? 내 마음이 편안해지기 위해 썼던 제일 쉬운 방법은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내 말을 듣게 만드는 강압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다 써 보신 분도 계실텐데요.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고 어떤 후유증이 생겼습니까

  내 안에서 들려오는 편안해지고 싶다는 목소리의 근원이 뭔지를 바라볼 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의 힘을 살펴보게 합니다. 그 사랑의 힘은 파스카, 건너감이라는 것이죠. 내가 가진 사랑의 개념에서 머물지 않고 더 큰 차원의 사랑으로 건너갈 때, 이것이 서로를 살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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