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일 미사.

2017. 1. 14. 오전 10: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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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주일 미사. 이사49,3-6; 1고린 1,1-3; 요한 1,29-34

  사람들은 자신이 무언가를 꼭 알고, 잘하고, 능력이 있어야만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럴까요? 예전에 만난 어떤 청년은 이랬습니다. 어떤 여자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아직 고백은 못하고 끙끙 앓고만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렇게 답합니다. 아직 제가 완전해지지 못해서요.’ 물론 본인 모습에 답답한 느낌이 들긴 하겠습니다만, 완전해지길 기다리다가는 그 여자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말텐데요. 여기 있는 우리 모두도 좋은 신앙인이 되길 희망합니다. 물론 느끼기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나약해 보이니까요. 심지어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저 자신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와중에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앞서 방금 여러분이 들으셨던 말씀 속에서 예언자나 사도들, 심지어 세례자 요한까지도 우리와 상황이 비슷했다는 말씀을 드린다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1독서의 이사야서 비슷한 말씀이 계속 나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라며 말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런 것을 발견합니다. 그분이 해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은 들었지만 아직 그것이 현실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약속은 들었는데, 그것이 아직 실현되고 있지 않다면 그동안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작정 기다리기만 해야 할까요? 복음도 그렇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라고 주님이 오신다고 선포하고 있긴 하지만 2번이나 나도 저 분을 알지 못하였다.” 라는 말을 합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아니 자기도 모른다는데 뭘 얘 하겠다는거야?’.. 하지만 뒤이어 그는 과연 나는 보았다.” 라면서 본 만큼 체험한 만큼 증언하고 있습니다. 2독서는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편지에서 인사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오로와 소스테네스 형제가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에 인사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눈이 멀어버리는 체험을 통해 주님의 빛을 느끼면서 삶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이나 우리나 모든 것을 다  알고서 시작하고 진행한 것은 아닌데요.

  우리가 여지껏 해왔던 공부나 신앙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 비슷한 면이란, 지성인은 신성한 부름을 받는다 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명에 대해 인생을 바치는 사람을 뜻합니다. 단순하게 월급 받고, 연금 받고, 그동안 넣은 적금이나 보험금을 타내면서 만족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이 인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나의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 신성한 부르심에 걸맞는 행동을 해나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목표도 중요하겠지만 이것을 실행시킬 수 있는 과정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내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하지만 그것이 되려면 나의 시간과 돈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는지,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지, 귀찮다고 피하고만 드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가?’ 를 살필 때, 자신에 대해 통찰을 가질 수 있고, 꾸준한 마음을 잡을 수 있으며, 방법론적으로 무엇이 가능한 지를 살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이런 것을 귀찮아하지요. 그래서 누군가 해줬으면 좋겠고, 알아서 누가 비켜주었으면 좋겠고, 요행으로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삽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지요.

  독서와 복음을 통해 나온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도 잘 몰랐었지만, 어떻게 풀려갈지 몰랐지만, 그들은 자신의 생각에만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머리가 꽉 찬 사람이 아니라 가슴에 열정을 품으며 살았기에 무언가를 성취할 가능성이 더 큰 이들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아십니다. 하지만 많이 안다고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작용하니까요. 그 변수가 너무 많다고 일찍부터 포기하고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잖습니까? 불안하기는 우리나 성경 속의 나온 사람들의 상황이나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부딪히면서 작게나마 손에 쥔 체험이 밑천이 되어, 그들의 앞길을 등불처럼 비추면서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아직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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