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간 금요일. 히브 4,1-5,11;마르 2,1-12
마태오 복음의 마지막 장인 28장에는, 부활하신 주님과 열한 제자가 만나는 장면인데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부활하신 분을 눈앞에 보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분을 의심하는 현장입니다.
믿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단히 그럴 듯 하게 보입니다. 작은 꼬투리라도 하나 잡아서 참된 것을 펼쳐 보이겠다는 야심도 엿보입니다. 마치 이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그냥 마음으로만 잘 믿으면 되지, 꼭 성당에 나올 필요가 있나요? ’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실 수 있나요? 전 이렇게 되묻습니다. “남자친구 있어봤나요?” “예” “선물 왜 사주나요? 돈들게..밖에서 데이트 왜 하나요? 추운데.. 왜 만나야 되요? 마음만 있으면 되지 않나요?.. 우리가 하려는 사랑은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런 대답을 해주는 와중에도 이런 게 보입니다. 하나의 몸부림입니다. 그건 바로 ‘나도 뭔가를 믿고 싶어~’ 하는 소망입니다. 여러분의 가족 중에도 여전히 냉담인 가족이 있어서 가슴 아프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그러기에 ‘빨리 믿게 만들어야지’ 하십니다만,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조급한 마음보다 아직 마음이 열리지 못한 이들의 마음을 봐줄 필요를 느낍니다. 뭔가 믿고 싶어하지만, 쉽사리 우리와 같아지지 못하는 그들의 불안함을 봐 줄 때 답에 다다르는데요.
영성생활을 좀 먹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는, 하느님을 내 수준정도로 낮춰서 놓고 볼 때 시작됩니다. 내 수준으로 보기에 그 안에는 성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니, 거기에 무슨 희망이 있고, 무슨 바람이 있겠습니까?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들은 말씀이 참 생명을 가지기 위해서, 받은 말씀에 숨을 불어넣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숨을 불어넣는 작업이란 마치 복음에 나온 것처럼 한 명의 중풍병자를 낫게 하겠다고 애쓰는 정성입니다. 한 사람을 고치겠다고 남의 집 지붕까지 벗겨내는 황당스러울만큼 감동적인 정성이 결국 그를 살려냅니다. 우리도 보통의 수준을 뛰어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