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2016. 12. 24. 오전 11:40:49

글자

1224. 2사무 7,1-16; 루카 1,67-79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구세주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동안 준비 잘 하셨습니까? 그 분의 오심이 설레십니까? 개인적으로 한 주간을 보내면서 이런 것이 보였습니다. 세상이 만들어낸 법의 시스템이나 경제 관련된 것이나, 여러 가지가 완벽하질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틈이 생기고요. 예전보다 더 나은 것이 생겨나고, 어떤 때는 옛날 것이 더 좋기도 했습니다. 완벽하지 않기에, 완전하지 않기에, 빈틈이 생기고, 한계가 보이고, 마음도 불편합니다. 여기에 오신다는 구세주라는 분도, 완벽한 세상도 아닌, 좋은 시절의 세상도 아닌, 나이 들면, 병들고 쇠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 오셨답니다. 그것도 남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갓난아기로 오셨기에 이게 뭔가?’ 싶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겨납니다. 하느님께서 왜 일부러 생각에 한계를 가지고, 늙을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 사시려는 선택을 하셨을까?’ 라는 의문입니다. 물론 간단한 모범답안은 이것이겠지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토록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라고요. 헌데 과연 이 답으로 우리 마음의 답이 충족될까요? 이미 불완전한 나 자신과 가족, 동료를 보면서 답답해하고 계시잖습니까?

  몇 년 전, 독일 수도원에서 그 곳 신부님들과 같이 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날 주례 신부님은 젊은 신부님이셨는데 주례 제의를 입혀주는 제의방 신부님은 호호 할아버지셨습니다. 몸도 구부정하고, 손도 떨리는 모양새로 띠를 메어주고, 단추를 채워주고 계셨는데요. 가만히 그 광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분도 젊은 시절 때는 잘 나가셨을텐데.. 만약 젊었던 그 시절만 떠올리며 산다면, 절대 저런 수발을 못할텐데..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열심히 당신 할 일을 찾아서 하시는구나..’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는데요.

  아마 예수님도 그러셨을 겁니다. 전능한 하느님이 한계를 가진 인간의 생각과 몸의 틀에 갇혀 사는 것은, 생각만 해도 참 답답한 노릇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낮음의 자세를 통한 사랑으로, 구원의 큰일을 하셨다는 사실이 우리를 숙연하게 만드는데요. 남은 시간동안 성탄을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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