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묵시록 5,1-10; 루카 19,41-44
중국 진나라 말, 한나라 초기에 활동한 병법가이자 은거하며 지냈던 황석공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 의 ‘유휴세가’ 편에 기록된 것이 유일한데요. 그가 쓴 병법서인 ‘소서’를 장량이란 사람에게 주며 이런 말을 남깁니다. ‘성현이 아닌 자에게는 전해서는 안되고, 받을만한 자가 아닌데 전하면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할 것이며, 적절한 인재에게 전하지 않아도 역시 재앙을 받을 것이다.’ 결국 전해줄 만한 사람을 찾지못한 장량은 자기가 죽으면서 그 책을 함께 무덤에 묻는데요. 그러다 500년 후 위진 남북조 시대에 이르러 도둑이 무덤을 파헤치면서 다시 세상에 나오는데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볼 눈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떠올랐는데요. 독서에는 7번이나 봉인된 두루마리를 펴 볼만한 사람이 없자 원로 가운데 하나가 “유다지파에서 난 사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 양” 이라고 예수님을 지칭하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희망이 생기고 있고요. 복음에는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하며 못알아보는 우리를 보며 우십니다. 순간 이 내용이 듣는 우리에게 우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헌데 이 신비가 신자라고 하여 다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비신자라고 하여 반드시 제외대상도 아닙니다. 그런 가운데 우린 진리를 찾아 나서야 되는데요. 오늘 수능 시험날을 맞이한 수험생들이 더 큰 학교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단순히 좋은 학벌, 좋은 자리, 선망의 대상이 되고프다면 시험이 끝나는 동시에 모든 것을 잊을 것이고요. 이를 토대로 더 참다운 것을 찾는 이라면 그것을 알아볼 만한 사람으로 커 갈 것입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엘리사벳 성녀는 공주로 태어났습니다. 그야말로 걱정없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겠습니다만, 편안함에만 젖지않고 오히려 자선을 베풀고 거친 고행생활을 하며 더 올바른 것을 추구해 갔습니다.
아는 복음 말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지요.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롭다는 이들과 철부지들은 누구를 말할까요? 지금의 혼탁한 세상에서 말하는 참으로 철부지요, 어리석은 사람이 세상을 더 잘 들여다보는 것 같은데요.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을 똑똑하다는 사람은 버티고 있으니까요. 다행스럽게도 하느님의 말씀은 자격이 부족한 우리에게도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잘 따르느냐? 아니면 그냥 알고만 지나가느냐? 혹은 자기 식대로 곡해하여 이용하느냐? 는 다른 문제이겠지요. 우리의 그릇을 잘 닦아 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