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수요일.

2016. 10. 5. 오후 3: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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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7주간 수요일. 갈라 2,1-14; 루카 11,1-4

  사람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두려움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12제자들은 당시 율법학자들에 비해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을 것입니다. 배운 게 짧으면 아무래도 갑자기 물어오는 질문에 대응하지 힘들 꺼라는 두려움이 있었겠지요. 바오로 사도는 예전에 예수님을 잡아들인 전력(前歷)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랬기에 다른 사도들이 그를 무서워 했었고요. 그랬기에 그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두면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현실의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두려움은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위급할 때 본 색깔이 드러나는데요.

  오늘 독서에 보면 케파, 즉 베드로 사도가 예전에는 다른 이방인들과 음식을 잘 나눠 먹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할례 받은 유대인들을 만날 때는, 이방인들과 거리감을 두는 이중 플레이를 합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까봐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이러한 위선을 바오로가 꼬집는 장면이 독서에 나왔는데요.

우리가 이와 비슷할 때가 있습니다. 말로는 이웃사랑을 운운하지만, 정작 우리 공동체와 맞지 않는 사람과 사귀는 것을 누가 볼까봐 두려워하기도 하고요. 내가 사귀던 사람들 듣기 좋으라고, 맘에 없는 말도 해주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별로 좋지 않는 뒷담화를 하는데 동참하기도 하는데요. 이게 바오로가 말한 위선이지요.

  사실 우린 이런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약점은 두려움을 없애줄 수 있는 기도 생활에 도움을 주는데요. 내가 약한 사람이다 임을 인정해주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약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쉬운 것이 없으니까요. 성가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아쉬우니까 주님을 목자라고 말하며 따르지요. 하지만 아쉬운 것이 없는 이는 시간 아깝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장면입니다. 그 기도문을 보십시오. “~주시고,,, 하소서하면서 뭔가를 원하고 비는 내용들입니다. 빌고 청원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약하고 부족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의 약함을 인정할 때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가 유지되면서, 앞서 언급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기에 우린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야 나다워 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두렵습니다. 하지만 우린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통해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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