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 수요일*

2016. 9. 1. 오전 9:12:52

글자

연중 22주 수요일.*

  아이들을 키워보셨으니 아실 겁니다. 손주들을 만져보셨으니 더 잘 아실 겁니다. 어린이들의 보드라운 살결, 부드럽게 돌아가는 관절의 유연성,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의 호기심,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시간들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어린이들이 나중에 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처럼 되지요. 이젠 어디가서 안마나 맛사지라도 받아야, 등판이라도 좀 지져야 살 것 같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생각의 사고도 예전같지 않게 한계의 틀을 긋고 그 틀 안에 갇혀 지내는 것을 편하게 여기는데요.

  바오로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서 편 가르기의 모습을 질책하시지요. 복음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붙들고 붙잡고 싶은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하려는 일은 그 누구만의 것이 아니지요. 어린이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그야말로 겁을 상실한, 거칠 것이 없는 자연스런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우리에겐 메이지 않으며 계속 뻗어나가야 하는 것을 받은 이들입니다. 물론 불안하기도 합니다. 미래 또한 불투명합니다.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계속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멈추지 말고 말이지요. 그럴 때 뭔가 얻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여전히 창작과 창의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예전의 것에서 가져왔던 방식의 한계를 발견합니다. 흥미로운 사안은 우리가 하는 기도의 삶속에서도 새로운 방법, 새로운 시도를 얻는 영감(靈感)을 받곤 합니다. 당신의 일을 하면서 이것이 내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으신 분들이라면 방금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실 것입니다. 마치 시인은 시를 계속 쓰면서, 기술자는 기술을 매일 숙련하면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해가고 더 나은 선택을 해야하는 이들입니다. 이런 체험이 우리는 더 차원 높은 곳으로 인도합니다. 그것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