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토요일. 에제 18,10-32; 마태 19,13-15
가끔 위기가 닥쳐올 때 무엇이 잘못 돌아갈 때, 이런 탄식을 내뱉을 때가 있습니다. '내 잘못으로 우리 애가 이리 되었구나. 묫자리를 잘못 썼는지 안 풀리네' 하면서 이런 문제가 조상 탓이거나 연죄제처럼 대를 이어 발생하는 것에 힘들어 할 수 있는데요. 이런 태도는 옛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1독서에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자식들의 이가 시리다는 속담을 말해 대느냐?" 라고 탄식하시며 "죄 지은 자만 죽는다" 하십니다. 즉 개개인 하나하나에 집중하셔서 상이나 벌을 주시지 누구때문에 한 집안을 퉁~쳐서 부담을 떠안게 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인데요. 그래서 교회에서는 가계치유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계치유란 무속적인 혼 묶음을 통해 치유하는 것이지요. 민수기 14,18절에 나오긴 합니다만, 우린 조상들의 죄가 후손에게 미쳐서 그 집안이 고통을 안겨주지 않는 신앙임을 천명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죄는 유전되지 않습니다. 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이구요. 기복신앙으로 흐를 수 있게 만들지요.
오늘 복음은 우리의 약한 마음을 잘 잡아주시며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의 특성을 살펴봐야 하겠지요. 어린이들은 단순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단순함이란 어리거나 유치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순히 인정하고 남 탓을 하기보다 문제의 발견을 자신에게서 찾으려 하고요.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더 큰 존재에게 의지하려 하고요. 자신의 잘못을 얼른 고치려 합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좀 달라집니다. 남 탓을 하려들고, 핑계꺼리를 찾고, 자기 식견에 가로막히고, 자기 이득을 챙기고자 계산된 선행을 하기도 합니다. 그게 살고자 하는 몸부림일 수도 있겠지만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그렇게 하여 죄가 너희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여라." 잘 살려고 하다가 오히려 늪에 빠지는 듯한 현상도 빚어집니다. 그러기에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가 왜 미사에 오고,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시고,. 고해성사를 할까요? 예전 상태로의 회복, 순수했던 그때로의 돌아감, 계산이 깔리지 않는 하느님의 마음을 닮고자 이런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